ㅂ 불규칙, ㄹ 탈락, ㄷ 불규칙, ㅎ 불규칙, 으 탈락
"그것은 마음을 흐릿하게 하고, 사람의 생각을 비틀며, 침묵 속에서 불안을 길러낸다. 무언가 곧 일어날 것만 같은, 숨 막히는 공기."
'시로코(Scirocco)'는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발생해 지중해를 가로질러 이탈리아, 시칠리아, 그리스, 발칸반도까지 영향을 미치는 바람이다.
강한 바람과 함께 황사, 먼지, 모래를 동반하여 비로 내리기도 하고 기온도 30~40도까지 치솟아 "시로코가 불면 아무 일도 안 하는 게 상책"이라고 할 만큼 시칠리아나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시로코가 부는 시기를 휴식의 시간으로 여기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온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가 좋았다."
한동안은 중국에서 오는 그녀들이 그런 말을 했었고, 그다음은 베트남에서 캄보디아에서 오는 그녀들이 그랬다. 그럴 만큼 그녀들은 어렸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에 와서 혼인신고를 하고 임신을 했다면 한 고비는 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이 험하고 험해서 '코피노'와 같은 아이들도 있으니까.
베트남에서 결혼식은 했으나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해 6개월씩 입국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 코로나 때문에 2년 가까이 들어오지 못한 경우도 있고, 그 사이 혼자 아이를 낳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어떤 그녀들은 한국 남자를 수단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내가 제일 불안한 순간은 인천공항에 도착했는데 남편이 마중을 나오지 않는 경우였다.
그녀는 아들을 막 출산한 상태였다. 한국사람이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외모였다. 집도 꽤 좋은 아파트였다. 남편은 둘째 아들이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시어머니가 음료수와 과일을 대접해 주셨는데 '초기 치매'라고 했다. 한동안 알지 못했는데 안방 침대에 시아버지가 뇌졸중으로 누워있었다. 그리고 또 알게 된 사실은 남편이 무직이라는 것이었다.
시어머니의 치매는 시간과 비례로 나빠져 갔다. 갈 때마다 달랐다. "어떻게 오셨어?" "아, 우리 애기 공부 가르치러 오셨구나!" 두 문장을 방에서 나올 때마다 반복했다. 나의 대답도 반복됐다.
시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손을 까닥까닥하면 그녀는 잽싸게 들어가 시아버지 기저귀를 갈고 나왔다. 왜 아들을 부르지 않는지 화가 났다. 시아버지 인권도 있고, 그녀의 인권도 있지 않은가. 시어머니가 치매가 아니었다면 달랐을까? 남편이 집에 없는 날은 수업을 거르게 되었다.
답답하고 막막했다. 그녀는 대학에서 무역을 전공했다고 했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통역사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그녀가 말했다. "서울에 건물이 있어요." 그곳에서 나오는 월세로 생활을 한다고 했다. 남편은 독립하지 못한 것일 수도, 안 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녀의 낯빛은 갈수록 어두워져 갔다.
한국에 오는 그녀들이 가장 먼저 도전하는 것이 마트에 가는 일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번번이 남편과 같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녀는 마트에도 갈 수 없었다. 미용실도 가지 못해 긴 머리카락을 둘둘 말아 올려 커다란 집게핀으로 집어 올리고 지내는 중이었다.
"선생님, 힘들어요."
보통은, 쉽지만은 않지만, 해결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집은 없었다. 병에 걸린 시부모를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조언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더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아득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부모를 비롯해 주위에 치매에 걸리는 사람들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그 대응방식은 각 가정마다 조금씩 다르다. 일찌감치 시설로 향하는 가정도 있고, 끝까지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복 많은 사례도 있다.
그녀는 한국에 오자마자 자신의 결정권은 조금도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고, 재산 문제가 얽혀 있으니 눈치 보는 남편, 그 남편의 눈치까지 봐야 했다.
드라마는 다양한 장르가 있다. 그녀가 본 로맨틱 드라마는 현실과 가장 멀리 있는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가족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본인의 역할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마침으로써 그녀만의 시간을 얻을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태풍의 눈 속에 있으면 오히려 고요하다. 그렇지만 태풍 밖으로 나가야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ㅂ 불규칙 : 가볍다, 무겁다
ㄹ 탈락 : 만들다, 들다
ㄷ 불규칙 : 걷다, 듣다
ㅎ 불규칙 : 이렇다, 하얗다
으 탈락 : 쓰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