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문제 풀이 중

일 / 하나 / 한 / 하루

by 온새미 결



하이패스 단말기가 인식을 하지 않는 날이 있다. 이걸 바꿔야 하나 하다 보면 또 며칠 정상적으로 작동을 한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그런다.


컴퓨터는 윈도를 업그레이드하라고 안내문을 띄운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 차라리 컴퓨터를 바꾸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게 한다.


갑자기 SNS 계정이 로그인이 안된다. 계속 시도를 해봐도 안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써 봐도 안된다.


휴대폰을 바꿔야 한다. 오래 써서 그런지 통화할 때 소리가 자꾸 끊어진다고 한다. 기종이 다양해서 결정을 하려면 또 꽤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될 것이다.


최적의 효용을 위해 검색을 거듭하여 산 태블릿은 생각보다 너무 무거워 가방에 넣을 때마다 후회를 하게 한다. 그냥 노트북을 살 걸 그랬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문제가 생기고 해결에 끝이 없다.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인생인가.




'일일, 하나만, 한시 삼십 분, 하루 한 번' 등은 '조사, 연결어미, 종결어미'와는 다른 종류의 극복 대상이다. 그 단원을 공부한다고 해서 끝난다고 할 수 없는 낱말들이다.

바짝 정신을 차리고 외우기에 돌입해 머리에 넣기는 하지만 살면서 계속 반복해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이를 말하고, 시각을 말할 수 있으면 그럭저럭 불편하지는 않게 생활할 수 있다.



그녀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처음 겪는 고비는 아마도 임신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저출생 문제의 많은 부분 해결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들은 임신부터 한다. 그리고 출산과 임신을 반복한다. 셋까지 낳는 가정도 흔하다. 이 세계에서는.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명 낳아 키우기도 어려운 것이 그녀들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형편이 나은 집은 모국에서 친정 엄마가 가족방문으로 한국에 와서 출산과 산후조리를 돕는다. 그녀들이 모국에 가서 출산을 하고 오는 일은 거의 없다. 아마도 국적 때문일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같이 와서 엄마는 그녀의 집에 머물고, 아빠는 돈을 벌러 가기도 한다. 오빠 혹은 동생까지 온 집안 식구가 한국에 와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다.



캄보디아에서 온 그녀는 키가 174cm라고 했다. 남편은 인근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21살, 남편과 나이 차이가 20살이 훌쩍 넘었지만, 나름대로 그 남편은 어려 보이기 위해 애쓴 성과가 있는 것 같았다. 키는 남편이 훨씬 작았지만 회사 다니고, 집안일 많이 돕고, 아내와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배가 많이 불러있었는데, 아들이라고 했다. 한 번 유산한 경험이 있어 무척 조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나 잠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집에만 있었다. 아파트 정문 쪽 상가에 어떤 상점들이 있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왜 그렇게 지내는 것인지 의아했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많이 생길 텐데 한국어 학습이 급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 학습은 효과적이지 않다. 얼마 못 가 출산을 하면 수업을 쉬게 되고 한 달 정도 후 다시 만나면 다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3주 정도 출산도우미가 집에 와서 산후조리와 신생아 양육을 도와주는 제도가 있어 겨우 우유를 먹일 수 있을 정도는 되었지만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할 수 있다고 했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는 아이를 재우는 해먹처럼 생긴 그물 침대가 있는데 중간 정도에 끈을 묶어 계속 그것을 흔들며 시간 내내 아이를 재웠다. 내가 가면 아기는 자고 있었고, 신기하게도 끝날 때가 되면 깼다.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우리 둘 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세상 어느 엄마가 아이를 쉽게 키우겠나. 예고 없이 아기가 아팠을 때, 남편은 집에 없고 그녀는 혼자 밖에 나가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아픈 아기를 안고 울면서 병원에 갔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병원이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친절한 간호사가 있으면 그녀는 진료를 받고 무사히 약까지 사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렇지만 친절을 베풀 수 없는 상황의 병원도 있다. 아픈 아이보다 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는 당황과 미안과 걱정과 두려움을 그대로 안고 집까지 돌아오게 된다. 그저 아이를 품에 꼭 안은 채.


그녀와 약국까지 같이 가서 약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 간호사에게 감사의 말을 덧붙여 전하고 싶다.



내가 그녀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은 1년 안팎이다. 아기가 태어나 웃고, 울고, 눈을 맞추고, 배밀이를 하고, 뒤집고, 이가 나고, 앉고 서고, 걷는 그 과정을 보는 것은 기쁨 그 이상이다.


그 사이 그녀들은 "주말에 아이와 공원에서 놀았어요.",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갔어요" 등의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된다. '지금, 근처, 많이, 조금' 등의 부사도 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몇 가지 음식에 대해 맛있다, 맛없다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둘째나 셋째를 갖지 않으면 한국어는 조금 빨리 습득할 수 있겠지만 아기를 키우면서 얻게 되는 행복감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루 종일 종종걸음을 하고 하루 이틀에 끝나는 일도 아니고, 갖가지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과정을 두 번 혹은 세 번 반복하는 그 시간 동안 그녀들은 몰라보게 성장한다. 나는 한국어를 배우는 속도보다 엄마가 되어가는 속도가 훨씬 빠른 것을 확인하게 된다.





좋은 날


아기가 태어나면

그녀의 젖이 돌고

이가 나오기 시작하면

아기의 입에 맛난 것을 넣어주며

오늘은 좋은 날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녀도 공부를 하고

글을 읽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목소리로 책을 읽으며

오늘도 좋은 날


아이가 새것을 눈에 담기 시작하면

그녀의 눈에도

모르던 세상이 들어오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려하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오늘이 가장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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