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히다'와 '맞추다'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그와 공원 산책을 나선다.
공부도 많이 했고, 직업도 괜찮은 사람이다.
나름대로 키도 적당하여 같이 걷기 그럴듯한 태가 나는 것 같아 기분이 괜찮다.
뭔가 꼬물거리며 세포가 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다.
날씨는 화창하고, 산들산들 바람도 불고, 길가로 핀 꽃들은 저마다의 모양과 색깔을 뽐내고, 높이 뻗은 나무에서도 향긋한 냄새가 난다.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가까운 사람들과 걷고, 뛰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람들이 좀 뜸해진 곳에 이르러 둘의 걷는 속도를 나란히 맞출 수 있게 되자 묵묵히 걷던 그가 입을 연다.
[꼬시 참 예쁘죠?]
[핻비시 참 조쵸?]
여러 가지 면에서 'O'이더라도 그는 'X'다. 그 순간 [꼬치]!, [핻비치]!라고 속으로 외치게 된다.
'맞히다'와 '맞추다'를 적확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정도는 이해한다지만 '꽃이'나 '햇빛이', '풀잎이'나 '닭이' 등 1단계 연음에 해당하는 발음을 틀리게 하는 것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다. 한국어 학습 세계에서는.
"오늘은 6월 11일이에요. 저희는 오늘 공원에 산책을 갔어요. 꽃이 참 예쁘고, 햇빛이 참 좋았어요. 우리는 풀잎이 곱게 자란 곳에 앉아 튀긴 닭을 먹고, 아이들은 퍼즐 맞추기를 했어요."
[오느른 유월 시비리리에요. 저희는 오늘 공워네 산채글 가써요. 꼬치 참 예쁘고, 해비치 참 조아써요. 우리는 풀리피 곱께 자란 고세 안자 튀긴 달글 먹꼬, 아이드른 퍼즐 맏추기를 해써요.]
그녀들은 이렇게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배운다.
성인이 되어 학습하는 언어는 습득도 쉽지 않지만, 잘못 습득한 것을 수정하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
그녀들이 한국에 와서 처음 만나는 사람, 자주 만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말과 행동에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제일 크게 영향을 받는 사람은 당연히 남편이나 시어머니다. 다음은 먼저 한국에 와 있었던 친척이나 친구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가 익숙하지 않더라도 사람을 대하는 자세는 출신국이 어디냐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의자에 앉기 전에는 앉지도 않는 예의를 지키려는 그녀들이 있는 반면,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것이라는 태도로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우리는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직장인이다. 월급은 국가나 지자체에서 예산 집행을 통해 지급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누구나 예의를 지키는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고 싶어진다.
나는 그때 이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때때로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비슷한 일을 반복하여 그 일이 신선한 자극을 만들어 주지 않을 때, 학습자의 개인적인 문제가 내 능력 범위 밖에 있어 무력함을 느낄 때, 자녀 서비스 중 도저히 개인적 능력만으로 학습력이나 학습태도의 진일보가 없을 때 그랬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주 다른 경우였다.
복지 정책의 수요자가 최대한 자신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찾아 적절한 시기, 적절한 양을 제공받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서비스를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받기를 원하고,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항의를 거듭하고, 폭력적으로 언성을 높여 끝내 개인의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려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복지 과도 요구자'에 해당한다.
원하는 정책이나 바람직한 방향을 제안하려면 그 또한 허용된 범위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당장은 불만이 있어도 그렇다.
공공의 이익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도 긴 시간 동안 끊임없는 요구 끝에 법률 개정이나 정책으로 수용되는 것을 경험하곤 하니까.
3단계 정도 되면 그녀들은 이제 한국에서 생활하기 꽤 적응이 된 상태가 된다.
말하기가 여전히 능숙하지는 않지만 듣기는 꽤 오류가 줄어들게 되고, 읽기도 그럭저럭 거슬리는 부분이 없어지고, 쓰기는 짧은 문자 보내기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한 상태가 된다.
중국에서 온 그녀는 한국에 온 지 10년 정도 되었다. 기간만큼이나 한국어도 능숙했다. 중국인인 만큼 한자어에 익숙한 것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아들 둘을 키우고 있었고, 남편은 꽤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한국어도 능숙하고 국적 취득을 할 것도 아닌데 3단계 수업을 신청한 것을 보니 꽤 한국어에 진심인가 보다 생각했다.
2주쯤 되었을 때, 자신의 시간에 첫째 아이의 학습을 좀 봐주면 안 되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그런데 그 태도가 '이미 그런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분위기였다.
그녀의 첫째 아이는 이미 자녀서비스를 완료한 상태였다. 그 서비스가 마음에 흡족했을 수도 있고, 그 시간 동안 자녀와 별개로 자신의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좋았을 수도 있었겠지.
7살, 5살 아들 둘을 키우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안 된다는 전제하에 어차피 그녀나 내가 서비스를 중단하지 않으면 그녀의 서비스는 유효하므로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녀는 지쳐 보였다.
그녀의 아들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ADHD가 의심되는 상태였다. 국가 지원을 받기 위해 테스트를 했는데 점수가 약간 모자라게 나와서 검사를 다시 하려고 한다고 했는데, 아이에게 이상한 조언을 했다. ADHD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가 의아했다.
아이는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왜요?'를 계속 놀리듯 반복했다. 집중력도 없어 계속 장르를 바꿔줘야 했다. 그림 그리기도, 만들기도, 조립도 효과가 없었다. 조금 만지는 것처럼 하다가 "선생님이 해주세요." 했다.
나는 자녀 서비스를 할 때 책을 이용한 학습만 하지 않고 많은 것을 한다.
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는 기본이고, 책 읽고 장면 그리기, 그림으로 이야기 꾸미기, 이야기 발표하기, 종이접기, 만들기, 만든 것으로 게임하기, 퀴즈, 블록, 퍼즐, 숨은 그림 찾기 등.
시간을 공부할 땐 시계를 만들고, 묶음을 배울 때는 '콩'이나 '공깃돌'이나 '블록'을 이용하는 등 수준에 맞게 여러 가지를 접할 수 있게 해주려고 한다.
여러 가지를 하다 보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과정에 관심이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 또한 다 나에게 해달라고 했다. 너무 일찍 학습세계를 경험한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한 달쯤 되었을 때 아이는 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런데 나와 상의도 하지 않고, 그녀는 아이의 방과 후 학습 활동을 여러 가지 정했다. 그러고 나니 나와는 정해진 시간을 다 채울 수 없게 되었다. 그녀를 위해 다른 모든 시간을 조정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2주 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나에게 한 마디 언질도 없이 센터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내가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며 비 윤리를 공개 저격하고, "왜 우리가 손해를 봐야 하느냐"라고 항의를 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남은 20여 회의 수업을 날려 먹었다. 센터에서는 그 수업을 중단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 동료들의 마음속에 벌점을 남겼다.
그리고 나는 진지하게 퇴직을 모색했다.
그녀는 남편의 결정을 따랐을까? 그녀의 남편은 그런 방식으로 효과를 본 경험이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와 남편은 항의가 통하는 선례를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내가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다른 시간을 변경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지도.
그러나 자기 원하는 대로만 될 수는 없다는 것을 판단할 수는 없었을까.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 자기반성을 했다.
그 경험이 그녀에게 약이 되었기를, 한국사회를 좀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손해를 볼 때도 있고 이익을 볼 때도 있는 것이 '삶' 아닐까 싶다.
인생, 이익만 보면서 살 수도 없고, 손해만 보면서 살게 되지도 않는다.
맞히다 : 무언가를 정확하게 알아내거나, 정답을 골라낼 때
맞추다 : 두 가지 이상의 것을 서로 일치하게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