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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굥굥 Oct 01. 2023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ㄴㄱ 22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안녕, 오랜만이야.

안부를 묻는 건 좀 우스우니깐 생략하자.

사랑이란 무엇일까.

요즘 새삼 이 질문을 자주 떠올려.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사람인만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아끼는 마음, 애정의 차이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겠어. 사랑인 동시에 애정이고, 질투이기도 하고, 미움이 되기도 하겠지. 너에게도 나는 사랑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잖아.

사랑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겠지만 그래도 역시 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너를 빼놓을 수는 없더라.

오랫동안 궁금했고, 여전히 가끔 떠오르지만 그때의 애틋함 보다는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겨진, 그리고 사랑받는 방법을 참 많이 알려준 사람.

그래서일까 너와의 기억은 퍽 생생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의 첫인상, 그리고 헤어졌던 그 순간까지도. 너는 사랑이 존재하는 온기를 보여준 사람이었어.

나는 계절에, 시간에, 흘러가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붙잡으려 하는 편인데, 너는 너 자체로 많은 의미였어.

그래서 결국 흘려가 버린 걸까.

우리가 헤어졌을 때 했던 말 기억해? 우리는 서로가 어쩔 수 없겠지만 소식으로라도 서로를 듣지 말자고 했잖아. 그 말을 친구들이 듣기라도 한 듯 몇 년간 서로의 소식을 정말 알 수 없었지. 몇 년이 지나서야 간간히 네 소식을 듣게 되고, 네가 가진 마지막의 기억마저도 비슷하게 닮은 게 재미있었어.

그리고 그땐 참 많이 아팠어. 그마저 닮았을까.

그땐 모든 걸 잃어보는 해였어. 직장도, 가족도, 건강도, 그리고 너도. 한 번에 덮쳐진 상실이 어땠는지 사실 기억도 잘 나지 않아. 그 뒤로 더 많은 아픔이 있었고, 괴로움에 숨 막혀했거든. 지나고 보니 아무렇지 않지만, 그때는 참 대단히 별거였어.

역시, 그때 내 손을 잡고 있었던 게 너라서 감사하고, 그래서 우린 그때 그 손을 잘 놓았다고 생각해. 아마 우리는 같은 이유로 결국 헤어지거나, 헤어지지 못해 더 힘들어했을 거야. 그래, 아주 만약에 우리는 그 아픔 속에서 서로를 더 의지하고, 함께 걸어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런 가정이 다 무슨 소용이겠니.

그래도 역시 너는 참 고마워.

나 쿠바를 여행했어. 그리고 그곳에서 드물지 않게 네가 떠오르더라, 너는 참 오랫동안 여운이 길다.

나는 늘 헤어짐이 마침표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도 결국 너를 통해 깨달아.

안녕,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영원히 남아있을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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