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쥐 부부가 만난 모스크바

큰 도시 모스크바에 도착한 날은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큰 도시에 들어가는 일이 언제나 긴장되긴 하지만 이제 여행도 한 달을 훨씬 넘어서 숙소 경험도 있고 차의 문제도 많이 해결되어서 큰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별이님 내외분은 붉은 광장에서 가까운 공원에서 무사히 정박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우리는 비도 오고 날씨도 추워지니 따끈한 샤워를 하고 싶기도 했고 안전하게 정박하기 위해 숙소를 예약했다.(만약 불법 딱지라도 떼이면 벌금을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다.) 시골쥐 부부는 생각보다 빨리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점심으로 외식을 할 수도 있겠다며 설레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은 여행 중 가장 최악의 날이었다. 그나마 많은 시련이 지나가고 지금 그 이야기를 쓰고 있는 현실이 감사할 뿐이다. 집을 가지고 다니니 빗 속에서도 주차만 하면 바로 식당을 차릴 수 있고, 마지막 남은 라면을 가장 맛있게 먹었다. 지금은 차를 마시며 일기를 쓰는 카페가 되었다. 행복하다.


차가 커서 주차가 안돼요

주소가 가리키는 길로 찾아 들어가니 주차 차단기가 올라가지 않고 영어가 안 되는 청년이랑 지나가는 사람까지 동원되어 소통 한 끝에 우리 차가 너무 커서 주차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근처에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나 혼자 내려서 프렌드 호스텔을 찾아 용감히 입구로 들어갔다. 러시아는 이런 건물 입구 안에 하나의 마을이 갑자기 나타나곤 하는 걸 여러 번 경험했다.


그러나 여기는 모스크바!

미로처럼 된 여러 갈래의 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입구로 들어올 때의 용기가 막 사라지려고 하는 순간 아까 만났던 주차요원 청년이 나를 알아보고 호스텔로 안내해 준다고 했다. 그런데 청년의 발걸음이 너무 빨라 순식간에 따라 가느라 내가 온 길을 되짚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일단 호스텔로 들어가 직원으로부터 주차가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 그렇다면 예약을 취소해 달라고 했다.(의례적인 몇 마디 말 이외에는 영어가 안 통했다. 난 글로 쓰고 직원은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서 겨우 의사소통을 했다) 직원은 나에게 수수료 없이 환불해주겠으니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영어가 안 되는 사람이 어떻게 그 말은 영어로 했는지 모르겠다. 그 말은 자주 사용했었나 보다) 아무 말이 없다. 너무 시간이 많이 흐르는 것 같아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묻자 아무렇지도 않게 " 두 시간"이라고 대답한다.


불행은 항상 겹친다. 광민 씨에게 전화를 하려고 보니 핸드폰의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난 일단 남편이 있는 차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미아가 되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미아가 되었다. 복잡한 미로를 헤매다가 밖으로 연결된 문을 겨우겨우 찾았지만 내가 들어왔던 큰길에 접해있던 문이 아니었다. 구글 정보를 찾느라 배터리는 점점 떨어지는데 차로 가는 길은 알려주면서 걸어서 찾아가는 길은 알려주지 않는다.


길에 서서 차로 가는 정보를 검색하니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고 하는데 우리 차는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남편에게서 전화가 오는 바람에 배터리가 더 떨어져서 불안했지만 광민 씨는 충분하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불안한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헤매던 입구로 다시 들어갔다. 차근차근 침착하게 찾기로 결심하고 나니 생각보다 빨리 큰길로 연결된 입구가 나타났다.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자칫 남편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냥 다시 처음 헤어졌던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도 힘들었지만 남편 마음이 더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여행지의 마지막 '거주지 등록증'이 없어서 숙박이 허락이 안돼요

가까스로 찾아낸 새로운 호스텔을 찾아가니 이번에도 주차 차단기가 길을 가로막는다. 게다가 뒤에 있는 자동차가 안 비킨다고 빵빵거린다. 난 재빨리 차에서 내려 호스텔을 찾았는데 이번엔 입구에서 거의 정면에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호스텔 직원이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알아듣고 차단기를 올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준다. 아! 내가 모스크비에서 오늘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하고 총명하며 센스 있고 순발력 있는 사람! 이제 우리의 문제는 모두 해결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호스텔 직원이 이번엔는 출입국 신고서나 세관신고서처럼 생긴 서류(거주지 등록증)를 보여주며 그런 것을 내놓으라고 한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어리둥절했다. 다행히 이 직원이 한국계 러시아인 이어서 한국어를 제법 한다. 광민 씨는 그 서류가 무엇인지 알겠다며 찾으러 갔으나 없었다( 그것은 그 나음 날 크렘린 광장 입장을 위해 준비한 내 여권 속에서 발견되었다. 실수가 돈을 벌어 준 첫 번째 사건이다.)


그녀는 바쁜 가운데도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묵었던 (노보시비르스크의 에비뉴 호텔)에 전화를 해서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그쪽에서 우리가 예약했던 사실이 없다고 말해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


우리를 서류가 없어도 되는 곳에 소개를 해 주려 했지만 남녀 따로 숙박해야 한다고 했고, 여기서 더 이동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으므로 주차만이라도 가능하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가 비용을 묻자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오히려 날씨가 추운데 차 안에서 잔다니까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필요한 물도 얻을 수 있었고 샤워와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모두 무료로..


모스크바에서 지하철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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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많은 힘든 위기를 지나면서 우리 부부는 훨씬 더 단단한 한 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붉은 광장에 가려고 길을 나설 때 비가 왔지만 우비를 입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인 것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나는 마음으로 모스크바에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 중의 하나인 지하철을 타자고 말했다.


그러나 남편은 나를 철없는 아이처럼 쳐다보며 조금 퉁명스럽게 말한다.

"지하철까지 너무 멀고 구글 정보도 없어서 불가능 해."

그러면서 택시를 부르려고 핸드폰을 꺼냈다. 그것도 비를 피할 수 없는 곳에서...

배낭에 있는 우비를 입자고 해도 아직 괜찮다며 또 고집을 피운다. 난 화가 나서 혼자 비를 피할 수 있는 한 구석에 서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쉽게 잡히던 택시가 이 근처엔 없는지 남편이 계속 핸드폰을 놓지 못한다. 난 다시 억지로 착한 마음을 내어 호스텔 정보에는 가까이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고 돼있었기 때문에 지하철 역이 근처에 있을 것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자고 했다. 남편은 아직도 화난 표정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그럼 알아서 찾아가 봐."라고 말한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본 어떤 노신사가 지나가다 멈춰서 우리에게 도와주겠다고 한다. 난 그동안 연습했던 러시아어를 동원하여 지하철역으로 가려고 한다고 말했고 다행히 방향을 뜻하는 말과 숫자를 기억해서 거리가 어느 정도 인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자세히 들었다. 그 많은 정보를 내가 다 알아들었다고 해서 다시 물어보지 말란 법은 없다. 옛말에 ‘아는 길도 물어가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 자신 있는 생각으로 출발했었다.


하지만 큰길로 나오니 왠지 막막해진다. 남편은 나보다 더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가 힘든 사람이다. 나 역시 비가 오는 아침 길에 바쁜 걸음을 멈추게 할 만큼 간이 크지 못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물어보고 방향을 추리를 해 가며 겨우겨우 지하철 근처까지 갔었다. 그러나 러시아 지하철 입구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숨어 있어서 숨바꼭질하듯이 찾아내었다.


러시아는 뭐든지 내세우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지하철역은 왜 이리 감춰두는지 모르겠다.


힘겹게 찾아간 러시아 지하철은 명성만큼 크고 화려했다. 매표소엔 줄이 길었고 난 그동안 우리가 갈 역 이름을 연습하고 있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열심히 연습한 붉은 광장을 말하고 내 발음을 알아듣지 못할까 봐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두 장을 달라고 하였다. 직원은 친절하게 웃으며 동전 두 개를 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러시아는 어딜 가나 1회권의 가격이 같으므로 굳이 역 이름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음은 그 예쁜 동전을 기계에 넣고 개찰구로 들어가면 끝난다. 이 점이 가장 좋았다. 작은 표를 내릴 때까지 간직해야 하는 게 늘 부담이 되곤 했는데 러시아는 입구에서 책임이 끝나니 지하철 안에서 표를 잃어버릴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남편은 이 좋은 제도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낸다. 현대사회는 연계성이 중요한데 러시아는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사회라는 것이다 이런 기계식으로는 버스와 환승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면서.. 그리고 다시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역 이름과 노선표를 사진 찍어 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똑똑하고 치밀한 우리 남편. 난 그런 남편에 비해 즉흥적이고 막무가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지하철을 타고 싶다고 진지하게 미리 말했으면 서로 힘들지 않았을 텐데.. 남편이 여행 전에는 늘 관대하고 한 번도 불합리하게 화낸 적이 없는데 여행이 많이 힘든가 보다.


기분 좋은 지하철 여행으로 우리는 다시 사이가 좋아졌고 갈아타기까지 해 가며 붉은 광장에 무사히 다녀왔고 덕분에 두고두고 모스크바 지하철 여행은 내 덕에 했다고 자랑할 일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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