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첫날 몬테모나코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오는 길은 너무 아름다웠고, 커다란 호텔들도 있었다. 우리는 차에서 몇 번이나 내려 무료로 경치를 감상하며 산을 넘었다. 진품 마터호른이나 아이거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알프스의 진경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일찍부터 서두른 까닭에 우리는 아주 따뜻한 햇살이 좋은 시간에 이탈리아에 들어왔다. 우리가 도착한 정박지엔 다른 캠핑카도 한 대 있었다. 이웃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 하지만 차에선 기척이 없다. 우리만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도 좋은 일. 럭셔리한 잔디주차장에 돌 수조가 딸린 수도 옆에 아톰을 세운다. 수도꼭지를 트니 시원한 물이 펑펑 쏟아진다. 이 물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눈 앞에 알프스 산에서 내려온 물이겠지. 스위스를 지났지만 난 여전히 알프스의 물을 먹는다. 국경이 자연을 갈라놓을 수는 없으니까.


주차장엔 수도 외에도 오폐수 버리는 시설이 있고, 맞은편 넓은 잔디공원엔 커다란 돌 테이블과 벤치가 있다. 따뜻한 햇살로 젖은 것들을 말리고 , 그동안 사용하지 못했던 바람 소파도 만들어 누워본다. 이제 그리움이 돼 버린 알프스의 설산이 잡힐 듯이 보인다. 따뜻해진 햇살에 뒤쫓아 오던 겨울을 이젠 조금 따돌린 기분이다. 확실히 마음이 넉넉해진다. 그런데 아쉽게도 화장실이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원래는 있는데 폐쇄된 것 같다. 그리고 우리한테 필요한 마트나 은행을 기대하며 마을 산책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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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도착해서 바로 옆의 스위스랑 이렇게 분위기가 다를지를 별로 상상해 보지 못했다. 멀리 절벽처럼 경사진 산 위에 알록달록 보이는 집들이 스위스의 소박한 목가적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큰길을 건너 마을 길을 찾아 올라가 본다. 가까이 가보니 길이 미로처럼 여러 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우선 높이 보이는 오래된 교회를 향해서 올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꾀 멀리 높은 곳에 있다. 되돌아 갈 길이 조금 걱정되기 시작한다. 더운 햇살에 땀이 나고 다리가 지칠 무렵 중세 교회가 나타난다. 일단 전망이 훌륭해서 주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시원한 바람에 걱정이 날아간다. 언제나 큰 건물은 이런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잠시 쉬었더니 호기심이 다시 가동, 길을 걸으며 이탈리아의 오래된 시간들과 마주친다. 스위스보다 한층 화려한 정원의 꽃들과 독특한 장식들에 자꾸 걸음이 멈춰진다. 그러다가 나의 걱정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직도 우리 집을 향하고 있지 못한 현실. 우리가 찾던 마트나 은행은 고사하고 지금쯤은 우리의 집과 가까워지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러나 남편 광민은 한 번 갔던 길로 돌아오는 일을 꾀 싫어한다. 큰길로 이어지는 다른 길이 있을 거란 얘기를 하며 자꾸 앞으로 걸어간다. 하지만 인간 내비게이션 광민도 틀릴 때가 있는 법. 내 말에 더 귀를 기울였어야 한다. 큰길은 너무 멀리까지 이어져서 있었고 결국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길을 찾아 내려 오려했지만 중간에 사유지와 연결돼 있어서 다시 오르락내리락. 그래도 우리가 처음에 갔던 길보다 조금 가깝게 다른 길로 내려오긴 했으니 광민은 자신의 바람대로 되었다고 좋아한다.


이탈리아에 대한 상상과 기대를 안 해서 일까? 마트도 은행도 없이 고즈넉하고 오랜 시간들이 느껴지는 이 마을이 마음에 든다. 멀리서도 아름답고 가까이서도 황홀했다. 아침이 되어 머리를 감는데 전혀 춥지 않고 시원했다. 차에도 알프스의 물을 가득 실었다. 따뜻한 햇살에 우리는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는 여정인 데다 스위스와 달리 길 옆도 낭떠러지가 아닌 평야나 구릉지대다. 상쾌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출발한다. 이제부터 나타날 우리 집 앞 정원 풍경들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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