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별 남편의 꿈

가족 운동

by 경주
우리 가족 운동은
골프로 하자.


응?


나이 들어서도
라온이 이길 수 있는
운동은
골프뿐이야.


...



아들이 어릴 때도

남편은 아들을 이기곤 했다.

아들 울리니 좋냐고

좀 져주라고 해도

그래야 아들이 열심히 한다며

혼자 승리를 만끽했다.


5살 이기고 함박웃음

...


좋냐..?


매번 그렇게 이기고 싶나 보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지금도

그는 여전히 아들에게 져주는 법이 없다.

(잼 뚜껑을 본인이 열기 힘든 척하면서 슬쩍 열어놓고는

힘들어서 못 따겠다며 아들 앞에 밀어놓고

아들이 뚜껑을 열면

아들의 힘을 칭찬하며

입에 거품을 무는 연기를 펼치기는 한다. )



이번에 제안한 골프 이외에도

그는 예전부터 가족 운동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럴 때마다 나 때문에 좌절이었다.




여름이 다가오면 그의 꿈은 '수영'.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수영을 3개월 동안 배웠지만

물에 뜨지 못하는 사람이다.

킥판에 손가락 하나를 얹으면 물에 뜨지만

킥판이 없으면 가라앉는다.

어릴 때 물에 빠졌던 기억 때문인지 워낙 겁이 많아서인지

여하튼 나는 물에 뜨지 못한다.


그나마 아이들, 남편과 수영장에 수없이 많이 다닌 덕에

현재는 60센티 유아풀에서는 숨쉬기 없이 잠시 뜰 수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아직 가족 운동으로 승인하기에는 역부족.





바람이 따뜻해지는 봄, 예쁘게 물들어가는 가을이 되면 그의 꿈은 '자전거'.


남편은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가르쳤다.

온 가족 자전거 여행이 꿈이라는 그.

종잇장 체력 딸은 오랫동안은 못 타지만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딸의 소원 중 하나는 엄마와 함께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그게 소원이라는 건 아직도 나는 페달을 밟지 못한다는 뜻.

내가 아들이 어릴 때 타던 세발자전거를 타겠다고 하자

아들은 그건 내가 너무 창피해서 안되니 참아달라고 했다.

배움에는 때가 있구나.

나도 어릴 때 세발자전거를 탔다면

겁 많은 나라도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다행은 두 발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는 아들이

남편과 탄천길을 따라 오랜 시간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아들은 아빠와 견주어도 체력이 뒤지지 않았다.

져주지 않았던 남편의 전략이 성공한 걸까.





눈꽃이 예쁘게 피는 겨울이 되면 그의 꿈은 스노 보드


남편은 겨울의 꽃이 보드라고 했다.

이번 겨울은 드디어 아들이 보드를 배울 만큼 컸다며 가르치기 시작했다.

남편의 속성 과외로 현재 아들은 S턴까지 할 수 있다.

아들이 보드를 시작하던 날.

나와 딸도 보드를 탔다.

딸은 제법 잘 탔다.

문제는 나였다.

아들이 초급 코스를 능숙하게 내려오는 동안 나는 겨우 혼자서 일어설 수 있었다.

딸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다음날부터 남편과 아들은 스키장, 나와 딸은 스파로 갔다.


다른 운동보다 힘들었던 건 보드였다.

왜냐하면 평소 나는 보드에 대해

추운 날 추운 곳에서 돈 내고 위험한 걸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드를 타고 내려온 아들이 환희에 차서 말한다.

한 번도 안 넘어졌다고.


남편은 말한다.

우리 아들이 대단하다고.


그날부터 보드가 그렇게 멋져 보인다.


아들은 아빠와 발왕산 꼭대기에서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내밀고

1485m에서부터 내려왔다고 큰 목소리로 떠들어댄다.

남편도 함께 무용담을 펼쳐놓는다.

더불어 그 멋진 정경을 한 번만이라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남편과 아들이 다칠까 걱정되지만 한편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고 멋지다.


남편과 아들이 바라보았다던 정경


골프에 대한 생각.


대학에 다닐 때 남편은 이과 계열이었다.

그럼에도 체육을 복수 전공할 만큼 운동을 좋아했다.

체육과에서 대부분의 운동을 배웠다.

다만 그가 피한 운동 하나는 골프였다.


운동 같지가 않다.

운동이 될 것 같지 않다.

땀 흘리며 배우는 맛이 없어 멋지지가 않다.


그런 이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직장에 다니면서 상사에게 권유받아 시작한 골프에서 그는 엄청난 즐거움을 느낀다.


사실 나는 골프에 대해서는

그가 예전에 가졌던 생각과 비슷하여 딱히 끌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남편의 의사를 존중해 보기로 한다.

수영, 자전거, 보드로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의 반평생 이상이 걸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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