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로는 돈 벌고 싶지 않은 남자

빨래가 안 마를 것 같아 포기한 강남

by 경주

2010년

결혼 당시

우리에게는

분당에서 전세를 구할 수 있는 자금이 있었다.


예비 신랑이었던 그는 평생 전세로 살자고 했다.

돈을 버는 즉시

매달 모두 다 쓰는 것을 원칙으로 즐겁게 살자고.


돈을 모아 집을 사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 남자와 살면서

돈을 모으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강제 모으기!


나는 전세를 구할 돈으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사자고 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나의 남편은 나의 말을 참 잘 따라주었다.


우리는

집을 구매하기로 했다.


2010년 당시

우리가 가진 자금과 직장의 위치를 고려하니

강남의 어느 나 홀로 아파트와

분당의 대단지 아파트를 보게 되었다.



첫 번째 후보지는 남편의 회사 근처였다.

역세권, 대단지, 학군, 공원 모든 것을 가진 아파트는

우리가 가진 자금으로는 어려웠고

하나를 택하자면 나의 선택은 입지였다.


우리 여기에서 시작하는 게 어때?

나 홀로 아파트이기는 하지만

강남이고 초역세권이라 교통도 편리하고

너의 회사와 가깝고

나는 원래 퇴근 시간이 빠르니까

둘이 더 빨리 만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아.
음, 경주야.

여기는 주변에 건물이 너무 높아.

유흥가랑 너무 가깝고

무엇보다 빨래가 안 마를 거 같아.

빨래... ?


음...

이동도 고려해야 하잖아.

아무래도 우리가 여기서 평생 살 건 아닐 테니까

이동할 때 그래도 분당보다는

강남이 시세차익이 더 있을 거 같지 않아?



당시에 건조기가

지금처럼 일반화되어 있었다면

그의 선택은 달랐을까?


그가 그토록 일광건조를 좋아하는지 몰랐다.




경주야.

나는 아파트로는 돈 벌고 싶지 않아.

건강한 돈이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벌고 싶어.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다고

나는 믿어.




...



그를 존중하기로 했다.

반박하기에는 그의 눈이 너무 초롱거렸다.


나 역시 그의 직장이 가깝고

추후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이야기한 것일 뿐

강남에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본 적은 없었다.


첫 번째 후보지는 그렇게 안녕!



두 번째 후보지는 나의 근무지 근처였다.

학군이 좋고 대단지이며 공원이 가까우나 역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곳.


여기는 어때?

공원 산책로도 좋고

초등학교는
횡단보도 하나도 안 건너고 갈 수 있고

중학교가
아파트에서 바로 보일 정도로 가깝고

전반적으로
엄청 평온해 보여서 좋다.




응. 경주야.

여기에서 살자.

버스 한 번이면

회사까지 갈 수 있어서 교통도 좋고

그리고

나는 시골 사람이야.

이렇게 자연이 가까워야 해.


등산로와 연결된 아파트.

나 역시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첫 시작이었다.






2010년 분당의 아파트를 구매한 후

우리 집을 포함하여 우리가 살펴본 집값의

추후 동향을 살펴보았다.


분당 아파트 집값은

매매 1년 후 가격 변동이 없었다.

(1년이 아니라 향후 5년 이상 보합이었다.)


그러나

강남의 나 홀로 아파트는 1년 후

주변의 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가며

전세 수요가 부족해지고

전세가가 급등하여 매매가에 영향을 미쳤고

우리가 사려고 했던 가격에서 1억이 오르게 된다.


서울의 위력을 느꼈다.

그에게 전하자 그가 말했다.

괜찮아.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되는 걸.

난 하나도 부럽지 않아.


시간이 흘러 우리에게는 아이 둘이 생겼다.


이사 욕구가 생겼던 우리는

여기저기 집을 보러 다녔다.


내가 가장 살고 싶었던 종로구에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궁이 가까운 종로구는

처음 가 보게 된 순간부터 메니에르로 사람이 두려워지기 전까지 거의 20여 년간 내가 가장 살고 싶어 한 동네이다. )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하여

가 보았다.


궁과 가까운 아파트라니

생각만 해도 황홀했다.


아쉬운 건 초등학교였다.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아이들 통학이 어려웠다.


나 없이 학교에 다녀야 할

어린아이들에게

익숙한 이 동네를 떠나

굳이 통학이 어려운 그곳으로 가자고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직장이 없었다면

바로 곁에서 통학을 도울 수 있었다면

주저 없이 종로에서 살자고 했겠지만

망설이다 훗날을 기약하며 그에게 말했다.

(사실 남편의 직장도 나의 직장도 먼,

오로지 나의 로망이라 살고 싶었던 종로였다.)


여기에서 꼭 살고 싶은데

나 없이 아이들이 통학하기
어려울 것 같아.

아이들 어른이 되면 이사오자.


그 아파트는 짧은 기간 안에

10억 이상이 올랐다.

결국 우리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그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없다.


남편이 묻는다.




경주야

너 어디에 살고 싶어?

네가 살고 싶어 하는 곳은

다 오르는 것 같아.

이거 저거 따지지 말고

너 살고 싶은 대로

이사 가자.


그때 살고 싶다며

왜 종로구로 이사 가자고 하지 않았냐고

네가 가자고 했다면

나는 이사 갔을 거라며

그 집을 샀더라면

어쩌고 저쩌고 한다.


그가

아파트로는

돈 벌고 싶지 않다고 선언한 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이다.




'아파트로는 돈 벌고 싶지 않다며

초롱거리던 그 눈빛은

내가 기억할게.



스무 살에 만나

마흔이 넘도록 함께하는 동안

출렁이기도

그대로이기도 한 당신.


당신의 세월과

나의 시간이 함께 쌓이어

당신을 알게 된 만큼


나의 편인 당신을

나는 또 새롭게 사랑해.'


* 당신이 보유하고 있는 원금 80프로 손실된 주식말이야... 회복될 거라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음... 그 주식은 기다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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