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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Dec 25. 2019

제목만 잘 지었어도 더 흥행했을 영화

영화, 포드 V 페라리(FORD v FERRARI, 2019) 감상평

 포드 V 페라리(FORD v FERRARI , 2019)라니, 이 영화는 제목을 잘못 지었다. 제목만 들으면 포드와 페라리 두 자동차 회사가 싸우는 내용 같다. 아마 미국 기업이 이탈리아 기업을 이기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미국 찬양 영화로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두 회사가 아니라 두 개인의 이야기고, 'V'가 들어갔지만 경쟁이나 싸움보다 협력을 말하는 이야기이며, 두 개인이 자기 자신의 만족을 찾아가는 영화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개인의 행복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제목이 가져오는 편견만 아니었더라면 좀 더 흥행이 되었을 영화, 그리고 마땅히 더 흥행이 되었어야 하는 영화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르망 24시(24 Heures du Mans)"라는 전 세계적인 대회가 있다. 프랑스의 도시 르망에서 14km에 달하는 코스를 한 자동차만을 타고 24시간 동안 계속 달리는 자동차 경주 대회다. 24시간 동안 3명의 레이서가 교대로 운전하는데, 한 사람당 총 8시간을 운전해야 한다.

 때는 1966년. 르망 24시에서 매년 우승하는 페라리 자동차의 회장 엔초 페라리가 포드 자동차의 회장 헨리 포드 2세를 모욕한 사건이 일어난다. 포드 2세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단 한 번도 참가해본 적 없는 르망 24시에서 우승하라는 명령을 임원진에게 내리고, 임원진은 부랴부랴 외부 인사를 영입한다. 그 외부 인사가 주인공 캐롤 셸비(맷 데이먼 분)와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 분)다. 셸비는 르망 24시에서 우승 경력이 있는 은퇴한 레이서이자 경영자이고, 켄은 외골수에 다혈질이지만 셸비가 신임하는 레이서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자동차 경주. 그것도 24시간 동안 달리기만 하는 경주라니. 얼마나 무식하고 단순한지! 가장 빠르면서 지치지 않는 차는 무엇인가, 이 단순한 명제가 피 끓는 레이서와 마케팅에 목마른 자동차 제조사와 속도에 환호하는 전 세계 관중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는 피 끓는 레이서(였)다.


 영화의 초반은 포드와 페라리 두 회사의 회장과 임원진이 주로 나오며 회사 간 대결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중반부터는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의 '불가능을 향한 도전'을 보여준다. 미국과 이탈리아의 대결, 포드와 페라리의 대결인 듯하다가 영화는 축을 3차원으로 뒤틀어 두 남자의 꿈과 인생을 말한다. 때문에 어찌 보면 회사 경영에 관한 영화처럼 보이고, 어찌 보면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장인정신 이야기처럼 보이며, 어찌 보면 기계화와 자동화에 저항하는 휴머니즘의 이야기처럼 보이고, 어찌 보면 현실을 딛고 꿈에 천착하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끊임없이 차를 타고 실험하며, 페라리를 이길 차를 개발하는 켄과 셸비.


 이 영화를 연출한 제임스 맨골드는 전작 로건(Logan, 2017)에서 슈퍼히어로 장르로도 씁쓸한 죽음과 퇴장, 비장한 슬픔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 능력 있는 감독이다. 그는 왜 포드에 주목했을까. 포드가 단순한 자동차 회사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포드는 그 자체로 미국이고, 자본주의다. 포드의 창업자 '헨리 포드'는 컨베이어 벨트 생산 방식을 만들어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고, 이 대량생산이 시대를 현대(Morden)로 바꾸었다. (때문에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포드는 신으로 추앙받고, 그 세계에서는 달력을 포드 력을 쓴다)


 셸비를 연기한 맷 데이먼은 (톰 행크스 이후로) 미국을 대표하는 국민배우로 보인다. 어느 영화에서처럼 그는 적당히 젠틀하고 유연하며, 튀지 않게 영화를 받친다. 크리스찬 베일과 공동 주연이지만 사실상 베일을 서포트하는 역할인데, 그의 연기는 적재적소, 이야기 사이사이를 매워주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극 중에서도 데이먼은 레이싱 팀을 이끌면서 포드 임원진과 레이서를 중재하는 역할을 하기도, 레이서를 서포트하는 팀장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연기 자체로도 그는 감독과 관객을 이어주며, 때로 폭발하는 베일을 리액션으로 받쳐준다.


 켄을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은 원래도 연기 잘하는 배우였지만, 여기서 다시 보았다. 돌이켜 보면 그는 삐쩍 마른 외골수 역할을 참 많이도 했다. 체중을 극단적으로 감량하는 배우로도 유명한데, 영화 '머시니스트'에서 83kg에 달하던 몸을 55kg까지 뺀 일은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 아메리칸 사이코(2000)는 물론 머시니스트(2004), 파이터(2010), 따지고 보면 배트맨(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서도 그는 외톨이였고 고집스러운 사람이었다. 여기서도 다소 신경질적이고 마른 몸을 가진, 가족과 레이싱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를 연기했다. 그는 위 두 가지를 막는 사람에게는 화부터 낸다.


켄 마일스를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 수척한 얼굴이 고집 세고 화 잘 내는 캐릭터와 어울린다


 외톨이 켄 마일스의 아내 몰리 마일스(케이트리오나 발피)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몰리 마일스는 자주 나오진 않지만 나올 때마다 영화의 분위기를 확 바꾸거나 지나치게 뜨거워진 분위기를 안정시키는 씬 스틸러다. 켄 마일스가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켄은 관객에게 너무 위험한 남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내와 아들이 있기에 그의 마른 몸과 다혈질 연기가 폭력적이거나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가족을 위해 꿈을 포기하려는 켄의 모습이 많은 관객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었다.


 자동차 레이스 영화다운 스릴과 속도감, 쾌감을 선사하면서, 적당한 교훈과 감동, 생각할 거리도 던지는 영화. 음식으로 치자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과 무기질 비타민의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으면서 맛도 괜찮은, 밸런스가 좋은 영화라고 하겠다. 이는 물론, 감독의 연출과 세 배우의 호연 덕분이다. 데이먼과 베일은 원래부터 믿고 보는 배우였고,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제목에서 생기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영화를 보고 나면 미국 애국주의는커녕, 포드를 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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