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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Mar 16. 2021

모두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영화 '미나리(Minari, 2020)' 감상평

 영화가 시작하고 채 3분이 지나지 않아, 필자는 이 영화가 내 이야기라고 믿기 시작했다(실제로 오프닝의 완성도와 몰입도가 좋다). 영화 곳곳에 필자 본인의 모습이 너무 많아서, 객관적으로 이 영화를 평가할 수 없음을 미리 고백한다. 그런데 다른 이들의 영화 평들을 읽어보니, 다들 나와 같더라. 감독 정이삭도 '보편적인 모든 인간들을 영화다. 그렇게 해석되길 바란다.'고 인터뷰 했는데, 그는 성공했다.


  영화의 처음, 아버지(제이콥, 스티븐 연 분)는 아무것도 없는 풀밭을 일구어 농장을 만들려 아내와 딸, 아들을 데리고 아칸소로 이사 온다. 그의 본업은 병아리 감별사지만, 퇴근 후와 휴일에 쉬지 않고 일하며 농장을 꾸리기 시작한다. 마치 서부개척시대를 다루는 서부극처럼, 아버지는 아무것도 없는 풀밭에 첫 삽을 박아 넣고, 우물부터 찾는다. 아들 데이비드를 데리고 다니며 자기가 꾸릴 농장이 얼마나 근사할지, 얼마나 풍요로운 삶이 우리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설명한다. 어린 아들에게 자기 비전을 설파하는 장면에서 오히려 그가 겪고 있는 불안과 걱정, 가장으로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느껴졌다. 아들에게 밝게 외치는 장면은, 오히려 그가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 농장 일이 실패하면 가족들이 겪게 될 고난에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이는 필자 개인의 경험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스티븐 연의 탁월한 연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들에게 자신이 꾸릴 농장을 설명하는 아버지 제이콥.


 아버지는 병아리 감별사로서 암컷과 수컷 병아리를 구분하는 것으로 먹고살고, 감별된 수컷은 곧바로 도살 처리된다는 것, 아버지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아들 데이비드에게 “그러니까 우리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강박이자 삶의 원동력일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꿈과 열정,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강박과 걱정은 곧잘 어머니(모니카, 한예리 분)와 부딪힌다. 이 영화에서 매스컴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할머니(순자, 윤여정 분)이지만, 개인적으론 한예리의 연기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한예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과, 가장 섬세한 슬픔, 내면의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을 모두 맡아 훌륭하게 해냈다. 오랜만에 친정엄마(윤여정)를 만나는 장면에서 그녀는, 오래도록 엄마가 보고 싶었고 아시아계 이민자로서 셀 수 없는 고생을 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엄마를 반기는, 복합적이고 절제되어 있으면서 이 모든 것을 표현하는 어려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한예리의 연기가 가장 좋았다.


 할머니를 연기한 윤여정은, 사실상 이 영화의 주축인데, 윤여정을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본 입장에선 특별할 것은 없었다. 다르게 말하면 어느 매체이든 윤여정은 그녀 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 그녀는 심지어 예능에서도 그녀는 특별하게 빛난다-, 늘 보아왔던 호연(演 ; 뛰어난 연기)이기에 놀라울 것이 없었다. 그녀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을 기원하지만, 그녀가 받을 상보다 70대의 나이에 예산도 적은 미국 영화를 찍으러 미국으로 건너간 그녀의 도전정신과 열정을 더 높게 쳐주고 싶다.

의외로 이 영화에서 윤여정의 본격적인 연기를 볼 수 있는 장면은 적다.


 이제 감독에 대해 말할 차례다.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모두 자연스럽고 절제된 연기를 보여주고, 그것은 이 영화의 화면 연출과도 닮았다. 즉, 전적으로 감독의 의도라는 것이다. 영화 '문라이트(Moonlight, 2016)'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색감과 정적이면서 절제된 미장센(알고 보니 이 영화와 문라이트의 제작사는 'Plan B'로 같다). 그것이 이 영화의 인물과 그들의 연기와 맞닿으면서 상당한 현장감으로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는 느낌과, 동시에 '우화'로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처럼 보이게 하는,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을 동시에 들게 하는 훌륭한 연출이었다.

인물들의 의상이나 화면 색감, 배치 모두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아름다웠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는 기독교적 색채가 깊게 배어 있고, 이민자를 위한 영화라는 점에서 결국 미국인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미국 영화라는 시각이 있다. 동의한다. 하지만 단순히 미국 이민자를 위한 영화라고 보기에는, 한국인을 비롯한 보편적인 마음을 찌르는 부분이 많다. 필자는 이것이 낯선 곳 낯선 직장에 첫 발을 뗀 뒤 이에 적응하려 몸부림치는 사람의 이야기로도 보이고, 자신의 꿈과 가정을 모두 지키려는 (어리석고) 이상적인 남자의 이야기로 보이며, 어린 날 철없이 할머니를 피하던 나의 이야기로 보이고, 가부장적 남편과 보살핌이 필요한 자식들 사이에서 분투하는 여성의 이야기로, 전쟁과 이민 등 모진 고생을 겪지만 끝까지 굴하지 않는 어떤 인간의 이야기로도 보인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너무나 많은데, 이 인간 군상의 마음을 가까이 다가와 어루만진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칭찬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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