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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Apr 11. 2022

태어나서 처음 본 꽃

21개월 아이 육아일지

  아이는 이제 21개월에 접어들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겁이 많아서, 처음 보는 것은 일단 경계하고 잘 만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육아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다소 걱정이 덜한 것도 사실이다. 더 아기였을 때는 더 겁이 많아서, 비닐봉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도 잉잉 거리며 부모에게 안겼더랬다.


  이제는 좀 컸다고 처음 보는 것들도 만지지만, 매우 천천히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만진다. 유튜브를 통해 공룡과 동물들을 많이 보다 보니 지나가는 개나 고양이는 반가워하지만, 오히려 식물을 더 무서워한다. 특히 뾰족뾰족한 침엽수, 소나무들은 어딘지 모르게 무서운 모양이다. 가까이 가는 것도 싫어하고, 만져보라고 해도 고개를 젓는다.


  지난 주말, 본격적으로 봄이 되자 창경궁에 갔다. 다들 여의도 윤중로에, 잠실 석촌호수에 벚꽃을 보러 인파가 몰리던 그 주말이었다. 창경궁에도 이곳저곳 꽃이 피었다. 벚꽃이 핀 벚나무는 아이가 바라보기엔 너무 높은 곳에 있는지, 의외로 관심 밖이었다. 대신 아이는 연분홍색 진달래에 관심을 보였다. 1미터가 채 안 되는 아이의 눈높이로도 잘 보이고,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진달래꽃이 한가득 피어 있었다.


  주변에는 이미 진달래꽃이 개화하다 못해 꽃봉오리 채로 져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진달래꽃을 하나 집어 주니 여전히 뒷걸음질 친다. 낯선 꽃이 영 무서운 모양이다. 그래도 밝고 찬란한 연분홍빛에 아이는, 진달래꽃 주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와 와이프가 다른 데에 가자고 하면, 잠깐 따라오는 듯하다가, 이내 다시 진달래꽃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보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그 앞에서 서로를 찍어준다. 그러다가 눈치 없는(당연히 없을 나이지만) 아이가 그 사이를 걸어가 진달래꽃을 쳐다본다. 떨어진 꽃들에 눈이 머문다. 떨어져 있는 진달래꽃이 신기한지 연신 손가락질을 한다. 다시 몇 개 집어서 주니, 그제야 만진다.


  이제 아이는 활짝 웃는다. 예쁜 색감의 고운 진달래꽃이 자기 수중에 들어온 것이다. 전부터 만지고 싶었으나 겁이 나서 차마 만지지 못하였던 것 같다. 기꺼운 표정이다. 몇 개를 더 집어서 아이의 작은 손바닥에 올려 주었다. 그제야 아이는 우리를 따라오기 시작한다. 진달래꽃 한 움큼을 절대 놓지 않은 채로, 아이는 한동안 창경궁을 걸었다.


  그날 몇 시간 동안, 나는 무언가 대단한 것을 본 기분이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꽃을 본 순간, 처음 꽃을 손에 쥔 순간. 그 순간의 순수한 기쁨과 웃음. 그것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진달래꽃은 매년 봄에 보아도 심드렁할 뿐이었는데,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는 천천히, 그리고 여러 번, 시들어 떨어진 꽃과 활짝 핀 꽃들을 유심히 보았고, 여기서 보고 저기서 보면서 좋아했다. 꽃을 보면서 기쁜 마음. 그것은 사람의 순수한 감정이고 본능이구나. 오늘도 사람에 대해 배웠다.


  나도, 당신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꽃을 본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기뻐했을 것이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본 어른으로서, 오늘을 꼭 기록해두고 싶었다. 꽃도 당신도 아름다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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