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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Nov 09. 2016

두 가지 역사

어느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인가

대한민국에는 두 가지 역사가 있다.


  하나는 치욕과 패배의 역사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가까이 조선시대부터 들여다보자.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쳐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한일 강제병탄까지.


 사실상 강화도 조약 이후로 현재까지, 한반도의 정세는 한국인들의 것이 아니다. 1945년 패전국 일본이 물러가자 소련과 미국이 그 자리를 채웠다. 미군정을 지나 친일파가 친미파로서 간판을 바꾸어 득세했다. 여운형과 김구가 암살되고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반민특위가 해체되었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 청산은 몇 권짜리 책으로만 남았다. 잊지 말자고 어느 도서관 구석에서 뇌까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실제로는 잊히고 있었다. 그 친일파가 신한국당으로 한나라당으로 새누리당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 이후 우리는 독재 치하에서 42년을 보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제국을, 6.25 때는 북조선을 찬양하던 신문들이 우리나라의 주류 언론이 되어있다. 진정한 의미의 공화국이 된 지 20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박근혜라는 국왕이 다시 한국을 다스리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 남은 역사를 왜곡하려고 든다. 한구석에 남은 책마저 바꾸려고 국정교과서를 추진한다. 일본 보수세력보다 더 악질적이다. 일본 보수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한국 보수는 그마저도 없다.


 이 역사만 본다면 우리나라만 한 지옥이 따로 없다. 정의는 땅에 떨어졌고 불의가 기득권층이 되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정의를 말하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으로 통한다. 성공하려면 도덕과 윤리를 버려야 한다. 능력을 키우기보다 권력자에게 빌붙어야 잘 산다.


  하지만 한 가지 역사가 더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들불처럼 의병이 일어나 결국 일본군을 물리쳤다. 일제강점기에도 항일운동은 쉬지 않았다. 1919년의 3.1 운동은 민주공화국인 지금까지도 헌법 전문에 꼭 들어갈 정도로, 당시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앞선 비폭력, 민주, 평화운동이었다. 임시정부와 독립군의 활약은 일제를 물리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국의 명맥을 이을 정도로는 끈질겼다. 미군정 아래에서도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도 민중은 포기하지 않았다. 4.19와 5.18을 거쳐 6월 항쟁으로 결국 민주화를 쟁취했다. 박근혜 게이트를 맞아 사람들이 다시 거리에 나서고 있다. 이제는 재벌 2세 등을 비롯한 세습권력, 주류 언론과 싸우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두 가지 관점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약, 파란 약으로 비유할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대한민국을 보느냐에 따라, 이 나라는 끈질기게 좌절과 희망을 반복하는 땅으로 보이기도 하고, 끊임없이 고통받는 땅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느 관점이 옳으냐는 별 의미가 없다. 아마 두 가지 모두 사실일 것이므로.


다만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역사 모두 아직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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