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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Dec 07. 2017

잘 나가던 열차가 탈선할 때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2017) 감상평.

  최초의 추리소설은 1841년 발표된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이다. 증기기관차가 상용화된 지 16년 만의 일이다. 추리소설은 인간 이성을 십분 활용하는 '추리'가 곧 이야기의 중심이다. 이미 일어난 범죄의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데에는 인간(주인공)의 비상한 두뇌가 필수다. 이처럼 인간 이성을 절대시 하고, 인간 이성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풍조는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일어났다. 증기기관차는 산업화의 첨병이었으며, 인간이 "세상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다(원하는 곳에 계획된 시간 안에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상징이었다.
  그런 면에서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 2017)'이 살인사건의 장소를 증기기관차로 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가서 크리스티의 동명의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원작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재미를 추구한다. 영화 러닝타임 안에 다양하고 개성적인 인물을 소개하고, 추리의 단서까지 제공하면서 관객들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나 대체로 해냈다.
  배우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감독이자 주연을 맡은 케레스 브레너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덩케르크를 봤다면 알 것이다. 페넬로페 크루즈, 조니 뎁이야 워낙 유명하고, 웰렘 데포는 스파이더맨에서 악역으로, 주디 덴치는 007 시리즈에서 M으로 나왔었다. 미셸 파이퍼에게 청춘을 바쳤던 중년이 있었으리라. 스타워즈 새 시리즈의 주연을 맡고 있는 데이지 리들리도 출연한다. 
  영화 속 '오리엔트 특급 열차'는 실제로 존재했던 열차 노선이다. 프랑스에서 출발하여 이스탄불까지 이어지는, 유럽 대륙을 관통하는 이 열차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노선 곳곳이 끊어졌다.
  영화 속 열차도 눈사태로 탈선하면서 고립되는데, 고립된 가운데 범인을 찾아야 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에르큘 푸와로의 추리는 빛을 발한다. 원작 소설이 워낙 유명해 결말을 아는 관객이 많겠지만, (결말을 모르고 본 입장에서 평하자면) 매우 뜻밖의 반전이었고, 신선한 결말이었다. 
  앞서 밝혔듯이, 당시 열차는 근대화의 상징이자 인간 이성의 첨단 집합물이었다. 그런 열차의 탈선은 인간 사회가 궤도를 따라가는 열차처럼 계획대로 진행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영화의 결말과도 관련이 깊다. 주인공 에르큘 푸와로는 그동안 못 풀어내는 사건이 없었고, 그의 세계관에서 그의 추리는 궤도를 따라가는 열차처럼 거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방금 말했듯이, 인간 세상은 생각대로만은 되지 않는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은 이성중심주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열차를 갈아탔다. 
  이 영화, 원작 소설의 결말은 추리소설이 신봉하는 이성중심주의에 일침을 가하는 결말이었고, 근대 사회의 맹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말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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