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추억
서울이 고향이 아닌 사람에게는, 서울에 처음 온 순간이 있다. 이른바 '상경上京'이라고 하는, - 다소 차별적인 단어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번화한 이 도시에 온 첫 순간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인천에서 살았던 만큼 서울에 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부모님 또는 학교 선생님의 동행 없이 친구들끼리만 서울에 간 것은 고등학교 때가 처음이었는데, 그때 간 곳이 '교보문고 광화문점'이다.
계단을 내려가니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 벽도 없이 지평선처럼 펼쳐져 있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태어나서 그렇게 책이 많은 곳은 처음 보았다. 아니 지하에 이렇게 큰 공간이 있다니! 하나의 우주를 모아놓은 것 같았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었다. 책장 다음 책장이고, 책 옆에 책이 있었다. 각종 분야로 나누어져서 온통 처음 보는 책 투성인데, 모두 다 궁금했다. 다 읽어보고 싶었다. 관심 있는 분야의 재밌어 보이는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쳐보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책을 들쑤시고 다니는 동안 4시간이 넘게 흘렀다. 뒷목이 뻐근했다. 여기 있는 책을 제목과 목차만이라도 훑으려면 며칠은 걸릴 거 같았다. 나는 무한한 포만감과 충족되지 않는 호기심을 안고 돌아왔다. 그날 본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지식의 세계였고, 지평선이자 수평선이었다.
글을 쓰며 다시 떠올리는데도 기분 좋다. 서울의 첫인상은 교보문고의 수많은 책들이고, 서울 하면 떠오르는 문 역시 그 위에 버티고 선 광화문門이다. 결국 책은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門일지도 모르겠다.
학교가 광화문에서 멀지 않다 보니, 대학생이 된 뒤로도 교보문고에 자주 갔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가지는 규모와 광활함은 다른 서점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읽고 싶은 책이 없어도 책 표지를 보러 갔고, 책을 보고 싶지 않아도 필기구를 사러 갔다.
오랜만에 교보문고를 둘러보는데 문득 그때의 설렘이 생각났다. 그때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고 하던데, 내가 읽은 책을 만든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