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2박 3일 여행 (2019년 2월)
도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재방문을 피하던 곳이다. 2007년 일주일 정도 도쿄를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절이나 신사 등이 거의 없으니, 그저 동아시아의 대도시 중 하나라는 느낌이 들어 서울과의 차별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 위험 때문에 기피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홋카이도, 오사카는 가면서도 도쿄만은 피하곤 했다.
그러나 일본 여행만 8번을 가다 보니, 오키나와부터 규슈, 오사카, 홋카이도까지 웬만한 관광지는 두 번씩 가 보았다. 이제 재방문하지 않은 곳은 도쿄만이 남았다. 12년 만에 가보고 싶기도 했다. 도쿄 자체는 12년 전과 비슷했지만, 이제 내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러니 보이는 게 달랐다.
시즈오카에서 출발해 도쿄에서 렌터카를 반납하고, 처음으로 찾은 곳은 롯폰기 힐즈. 도쿄타워가 보이는 야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서울의 야경도 좋지만, 도쿄의 야경은 규모가 다르다. 서울처럼 산과 강으로 막혀있지 않고, 평평한 평야가 펼쳐져 동서남북 사방으로 막힌데 없이 펼쳐져 있다. 그러다 보니 더 멀리 더 넓게 보이는 야경이다. 서울보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더 광활하달까. 지평선까지 이어진 도시의 건물들이 거대한 일본의 경제 규모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도쿄에 두 번째로 와서 보니, 그것도 직장인이 되고 나서 와 보니 도쿄에 사는 사회인들이 보였다. 복잡하게 얽힌 지하철 노선을 따라 분주히 열차가 다닌다. 평일 낮인데도 승객이 많다. 그것도 중장년의 사회인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어딘지 모르게 침체되고 피로해 보이는 것이, 근면 성실한 직장인처럼 보였다. 입은 옷들은 하나같이 수수했다. 편의점에서 파는 대부분의 물건이 한국 공산품보다 질이 좋았다. 질 좋은 공산품은 곧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보였다. 수수한 옷을 입고 지하철에 피로한 얼굴로 앉아있는 이 사람들이 일본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누군가는 '부자 나라의 가난한 국민'이라 칭한다. 하지만 가난한 국민이어도 싸고 맛있는 거 먹고 즐길 건 즐길 수 있는 나라, 라고 부르고 싶다.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차치하자.
도쿄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대공습으로 대부분의 목조 건물이 불타버렸다. 유적이라고 할만한 고대-중세 건축물이 없다. 그나마 문화재로서 볼만한 것이 있다면, '구 이와사키 저택'이다. 미쓰비시 그룹의 창립자 이와사키 야타로의 장남 이와사키 히사야가 1896년 준공한 저택이다. 이곳의 특징은 일본의 전통가옥과 양옥이 함께 붙어있다는 것인데,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 나온 건물도 일식 건물과 양식 건물이 붙어 있는데, 그건 미에현의 '록카엔'이다- 일본식 가옥은 주거공간으로, 서양식 가옥은 파티나 손님접대 등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메이지 시대 재벌집이 이토록 화려했구나를 느낄 수 있다.
도쿄에서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일본의 선진적인 문화다. 긴자에 위치한 이토야(Itoya)는 1904년에 창업한 고급 문구점인데, 벌써 100년이 넘었다. 놀라운 것은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긴자에 14층 건물이 모두 이토야 문구점이라는 사실. 그 안에는 만년필부터 편지지, 다이어리, 색종이, 종이공예 상품, 밀랍 봉인과 도장까지 문구점에 있어야 할 모든 것이 있었다. 그것도 고급품으로만.
모두가 알다시피 문구점에서 파는 종이나 펜 등 은 먹고사는 데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물건들이 아니다. 문화생활 내지는 취미생활에 필요한 것들일 텐데, 그걸 파는 상점의 규모가 이토록 크다는 것은 이걸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부러웠다. 일본은 문화 면에서 확실히 선진국이었다.
도쿄에 오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은 도시였다. 주로 먹거리와 쇼핑이었지만, 대부분의 음식과 물건이 한국보다 질이 좋으면서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아 신기했다. 확실히 한국보다 앞서 있는 나라였고, 경제/문화 면에서 서울보다 선진적인 도시였다. 서울에 익숙한 나로서도 신기하고 부러운 부분이 많았다. 기회가 된다면 좀 더 길게 와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