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고통으로 잊는 법
간혹 사람들이 왜 진작 모발이식을 하지 않고 10년이나 가발을 쓰고 있느냐고 묻는다.
나라고 왜 시도를 안 해봤겠는가?
현재 모발 이식은 사실상 포기 상태다.
비용이나 수술받을 때의 고통 때문에 포기한 것은 아니다.
머리카락만 제대로 돌아온다면 뭐든 못 이겨내겠는가.
(탈모인들은 적극 동의하리라 믿는다)
네이버에 우리들(?)의 아픔을 공유하는 카페가 여럿 있다.
그곳에서 활발히는 활동하지 않았지만, 나름 제 집 지나들 듯 다니며 소통하고
여러 정보를 모았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에 탈모인들이 많은 것처럼, 모발이식이나 두피 문신 등으로 유명한 병원들도 많다.
수요 없는 공급은 없기 마련!
압구정, 강남 등 서울권을 비롯하여 부산, 대구에도 유명한 곳들이 있었다.
그곳을 다녀온 카페 회원님들(나에게 그들은 선구자 같았다)의 ㅇㅇ병원 모발이식 1주일 후기, 1달 후기, 1년 후기 등을 여러 차례 읽고 또 읽어가며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으리라는 큰 꿈(?)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나는 순진무구하게도(?) 자발적으로 가발 아웃팅을 해버렸고 (이건 나중에 또 따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이에 따르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명절 상여금이 들어오고 얼마 안 되어 모발 이식을 결심했다.
그간 모아뒀던 정보들을 바탕으로 상담받아 볼 병원들을 몇 군데 정해 놓고 서울 가는 버스에 올랐다.
지긋지긋한 가발 쓸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어찌나 흐뭇하게 미소 지었던가.
“하느님의 어린양...”
뜬금없는 기도문에 놀라지 않으셨기를.
그 당시에 내가 몇 배는 더 놀랐으니까.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간 ㅇㅇ병원 원장님은 진료를 보다 말고 갑자기 기도를 시작하셨다.
당시 상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러하다.
모발 이식수술이란, 남의 머리카락이 아니라 내 머리카락을 이식하는 수술이다.
즉, 내 머리카락을 비어있는 다른 부위로 옮겨 심는 시술인데, 나는 워낙 모량이 적은 상태이기에 애초에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혹여나 옮기더라도 떼어낸 부분이 또 휑하니 비어있게 될 것이고 다른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더라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라며(거의 7~8년 전 이야기이므로 요즘 기술은 어떨지 모르겠다) 단념하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잔뜩 기대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고 나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이 흘렀다.
아! 나의 선구자들은 왜 나에게 거기까지 알려주지 않았는가....
원장 선생님은 내가 불쌍하셨는지 갑자기 내 머리에 손을 올리고 기도문을 읊으시기 시작했다.
그분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헛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절대 특정 종교를 비하하거나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
한참을 기도하신 후 ㅇㅇ목사님의 책을 꼭 읽어보라며 책 제목이 적힌 쪽지를 손에 쥐어주셨다.
나중에 찾으려 했지만 당시 내가 경황이 없어서 눈물 닦은 휴지들이랑 같이 버려버린 것 같다.
그분은 모든 기도를 마치고 아주 큰 호의를 베푸는 듯 그 모든 상황을 보고 있던 간호사선생님에게
나지막이 부탁했다.
“이 분 진료비는 받지 마세요.”
이 상황에서 진료비는 무슨 얼어 죽을 진료비? 어안이 벙벙하다.
진료실에서 삐죽이며 나오는 나를 보고 동생이 눈치를 본다.
스트레스에는 역시 고칼로리 음식이지! 주변에 패스트푸드 가게로 곧장 직진했다.
햄버거를 먹으며 방금 전의 일들을 동생에게 쏟아 냈다.
온라인 후기 믿을 것 하나 없다는 둥 돌팔이라는 둥 이래저래 흉을 보며 태연한 척해봤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충격이 컸다.
단념하라는 그분의 말이 한동안 대못처럼 박혀있을 것 같았다.
병원은 나를 포기했지만 나는 나한테 그럴 수 없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감자튀김을 우적우적 씹다가 문득 한 가지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고통은 고통으로 잊자!
마침 맞은편 상가에 피어싱샵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수능 끝나고 귀를 뚫은 게 전부였는데 그게 생각보다 꽤나 아파서
더 이상의 그 엇비슷한 것들은 내 인생에는 없을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귀 뚫는 고통이면 지금 내 마음의 고통은 순식간에 잊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무턱대고 샵으로 들어갔다.
막상 뚫을 부위를 정하고 나니 무서워서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른 생각은 나지 않는다.
좋아, 이게 바로 내가 바라던 거야.
우득! 소리와 함께 귀가 뜨겁고 아파오기 시작한다. 뚫린 것 같다.
눈물이 또 찔금 난다. 아까 나왔던 눈물과 같은 눈물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실질적인 아픔을 이겨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새빨갛게 부어오른 귀 안쪽에서 예쁘게 반짝이고 있는 꽃을 보니 다시 배시시 웃음이 났다.
다른 것도 이겨내 보자.
마음을 다시 다잡는다.
조금 더 참아내면 언젠가는 예쁜 꽃이 또 내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나는 그 과정을 지금처럼 가뿐히 이겨 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