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그마 Jan 23. 2024

미용학원

“죄송합니다. 고객님 이번달 예약은 전부 마감이에요. 가장 빠른 날짜가 1월 8일인데 괜찮으세요?”

“그렇게 해주세요. 혹시 취소건 나오면 연락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하지만 부탁하신 분들이 많으셔서...”

“아, 그렇구나. 알겠습니다. 그냥 두세요. 8일에 뵐게요”

“네, 고객님 예약문자 넣어드리겠습니다”


까먹고 저번 달에 예약을 안 해놨더니 2주 전인데도 벌써 관리선생님 일정이 꽉꽉 찼다. 

내 예약만 이렇게 안 받아 주는 건가? 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건가? 에이 그럴 리가 없지. 

뜻대로 되지 않으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세상에 가발 쓰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 거야?

하긴 나도 10년째 써 가는데 내 손으로 잘 안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돈 내고 관리를 받고 있긴 하지만...

아휴, 다들 힘들겠다. 짜증 나겠다. 매번 이렇게 예약 전쟁이겠지? 아이돌 티켓팅도 아니고...

복잡 미묘한 감정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간다.


중요한 날(그러니까 특히나 자연스러워 보이고 싶은 날) 미리 관리를 받지 못하면 남들이 다 내 머리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실제로 전혀 그렇지 않으며, 생각보다 다들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아무리 머릿속으로 되뇌어도) 진땀이 나고 하루종일 쥐구멍으로 숨어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다. 

이번에는 다행히 특별한 일정이 없음에 감사하며 예약을 마쳤다.


예약 당일, 여유 있게 주차하려다 보니 조금 일찍 도착했다. 

이곳 주차장은 여러 상가 건물이 공용으로 주차장을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구역별로 주차를 하게 되는데 몇 대의 차들이 00모 구역으로 예약시간에 맞춰 도착하고 있었다. 


내 옆으로 고급진 벤츠 차량이 들어온다. '그렇군. 돈이 많아도 탈모가 있을 수 있군."

갑자기 떠오른 '탈모 만민평등설'에 웃음이 터진다. 


알고 있다. 쓸데없는 위안이다.


나는 예약시간에 맞추기보다 1-2분 늦게 들어간다. 

아직도 좁은 예약 대기실에 다른 예약자들과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사실 예약 대기실에서는 묘한 동지애가 흐른다. 

다들 ‘또 다른 동지군, 고생이 많소’하고 가벼운 눈인사를 주고 받고 끝나는데, 내가 있음으로 인해서 가끔 그 흐름이 깨지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서로 간단한 눈인사를 주고 받던 중 나를 한 번 쳐다보고,

 ‘어라, 내가 본 게 맞나? 여자 맞나?’하고 두 번 쳐다본다. 

괜한 피해의식이라고? 또렷이 계속해서 눈까지 마주치는 분들을 보면 나만의 오해는 아닌 것 같다.


예약자들이 순서대로 관리실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모자를 또 한 번 푹 눌러쓴다.

"ㅇㅇㅇ님? ㅇㅇㅇ님?"

아, 이름을 좀 작게 불러주면 좋을 텐데... 얼굴이 순식간에 뜨거워진다.


하긴 이름 호명 없이 어떻게 예약자 확인을 하겠어. 

아니다, 내 이름이 중성적이라 남자라고 생각한 건가...?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들한테 관심 없어!’를 마법 주문처럼 속으로 계속해서 웅얼거리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기석에서 일어난다.


호명하는 방식 말고 더 좋은 시스템은 없을까 머리를 굴려본다. 

예를 들어, 사전에 예약확인 문자를 보낼 때, 관리받을 방 번호를 같이 안내해 주는 것은 어떨까? 


관리선생님들도 지정 변경 할 수 없다고 명시까지 해놓았던데, 그럼 애초에 예약할 때 

방 배정까지 같이 해주면 안 되는 건가?


그래도 나름 큰 기업이니 곧 나아지지 않을까? 기다리면 될까? 언제까지? 

사실 일반인들은 이런 점이 불편하다는 것도 모를 텐데.


손재주는 쥐뿔도 없으면서 홧김에 생각한다.

미용학원 지금이라도 다녀버려?

이전 02화 분리수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