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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그마 Jan 16. 2024

바닷가재

탈모인과 바닷가재가 갖춰야할 기본자세

“서류 떼시려면 신분증 주셔야 해요”

“여기요”


내 신분증을 받아 든 직원은 빠르게 신분증 속 나와 맞은편에 서 있는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짧은 순간이지만 초고속 카메라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더디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바짝 긴장이 된다.

괜스레 얼굴이 뜨거워지고,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온 신경이 기울어진다.


‘왜 내 앞머리를 쳐다보지? 좀 부자연스럽나? 왼쪽 부분을 좀 더 덮을 걸 그랬나?’


이런저런 걱정에 식은땀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다. 그가 얼른 확인을 끝내고

다른 곳을 보기를(사실 신분증 검사일뿐인데!) 바란다.


나는 가발을 쓴다. 2015년부터 썼으니 이제 거의 10년 차다.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다 빠진 후에 다시 자란 내 머리카락은 예전과 같지 않다.

 모량이 현저히 적고 하늘하늘 아기머리카락 같다. 언젠가는 돌아오겠거니 하는 안일한 생각이 지금까지도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가발은 자연스럽지 않다. 오히려 ‘전체 가발’을 썼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모자처럼 통째로 쓰고 있기만 해도 괜찮았다. 내 머리카락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 지금은 ‘부분 가발’을 쓰고 있는데, 아무래도 내 머리 반 가발 반으로 지내야 하니 자연스러운 스타일링이 조금 더 어렵다.


가발은 온도와 습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록 똥손이지만 10년이나 쓰고 있는 경력(?)이 있으니 이제 스타일링 정도는 겨우겨우 해내는데, 바람 한번 불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래서 헤어롤은 나의 필수템이다.


탈모인구 1000만 시대인데, 대부분 남자들의 문제처럼 여겨지고 (그들도 창피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편하게 드러낼 수 있다), 여자들은 엄청난 결함인 것 마냥 쉬쉬하며 숨기기 바쁜 것 같다.

나도 아직 부끄럽다. 10년이 다 되어가도 나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더욱이 새로운 사람과 가까워지는 일도 부담스럽다. 친해지게 되면 아무래도 자발적이든 아니든 아웃팅(?)을 하게 되는데 이건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사회생활에는 최대한 눈에 띄고 싶지 않아 무채색 위주의 옷을 입고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있다가 얼른 집으로 오고는 했다.


나도 안다. 자신감 없고 위축된 모습은 오히려 무시당하고 남들 안줏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며칠 전 새해를 맞아 읽은 책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아 되새겨본다.


‘어깨를 펴고 똑바로 걸어라’

'12가지 인생의 법칙'의 저자 조던 B. 피터슨은 바닷 가재의 서열 싸움의 예를 들며 이야기한다.


겉보기에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보이는 행동을 하는 가재는 쉬이 공격하기 어려운 상대라고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고 상대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느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무시당하지 않고 서열 싸움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나도 위축될 필요 없다. 가발 쓰는 게 뭐가 대수인가?

눈이 안 좋으면 렌즈를 착용하거나 안경을 쓰는 것이고, 맨손으로 밥 먹기 불편하니까 수저를 쓰는 것이다.

머리숱이 적거나 두피에 문제가 있으면 가발을 쓰면 된다.

딱 그 정도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그리고 나 어깨를 펴고 똑바로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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