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쳐보자 프리덤!
구정이 코앞이다.
올해는 이상하게도 꼭 새해 전 공중목욕탕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작년 겨울에 용기를 내서 친구들과 갔던 온천 여행의 좋은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뜨거운 물에 온몸을 담그고 몸을 녹이고 싶었다. 아니면 친구에게 이끌려 처음 들어가 본 사우나의 강렬함이 나를 그곳으로 이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동네를 비롯하여 내가 사는 지역 전체를 통틀어 맘 편히 갈 수 있는 목욕탕은 없었다.
아무래도 내 머리 때문이고, 흉한 수술 자국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은 지방의 작은 소도시이기 때문에, 익명성이 없다.
건너 건너 동창의 딸의 사촌에 친구를 파보면 그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큰맘 먹고 다른 도시로 향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온천수 나오고 규모도 큰 곳으로 정했다.
아무리 다른 도시라고 해도, 가발을 쓰고 벗는 내 모습을 보일 자신은 없으니 애초부터 모자를 썼다.
오랜만에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니 기분이 좋다.
목욕하러 가는데 무슨 고속도로를 타냐며 엄마는 씁쓸한 듯 웃었지만, 날씨도 좋으니 여행 느낌도 나고 괜히 신이 난다.
이곳은 어르신들에게 입소문이 난 곳이라 그런지 젊은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도 없었다.
모두가 자기 몸 씻는데 열중이고, 온탕과 냉탕 그리고 사우나에서 조용히 명상하고 있었다.
지나다니면서 서로를 흘깃 쳐다보기는 하지만 탕에 들어갈 때는 매너상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올린 탓에 나의 다른 점이 드러나지 않아서, 내가 그냥 그들 중 하나인 것 같아서 좋았다.
사우나를 오가거나 본격적으로 씻을 때는 매직망토 같던 머릿수건을 더 이상 쓰고 있을 수가 없어서 '에라 모르겠다' 상태였는데 그분들은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 보다 산전수전을 오백 번도 더 겪으셨는지 나를 보고 놀라지 않으셨다.
나를 지나가는 눈빛들은 나를 이상하게 보지도 그렇다고 무작정 동정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그들 중 하나였다.
어느 정도 어떤 정도의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하고 '넌 그랬구나'하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사우나에서 뜨거운 공기를 들이켜면서 오랜만에 진짜 자유로움을 느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레카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목욕을 끝내고 머리 말리는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는 줄 알았던 아주머니는 알고 보니 너무 많이 짠 크림을 덜어낼 휴지를 찾고 있었던 것이고, 불친절한 건가 무신경한 건가 생각했던 카운터 아주머니는 외국인이셔서 말씀하시기를 꺼리셨던 것이었다.
유레카였다. 유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