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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Mar 15. 2024

출근을 포기했다.

유소식에 비소식


삼월 팔일 목요일 밤 9시 응급차에 탔다.


머리 위로 빨간 불빛이 빠르게 왔다 갔다 비춘다.

‘큰일 났어 긴급상황이야 정신 똑바로 차려 ‘

라고 흔들어 깨우는 것 같았다.


구급대원이 이것저것 물어보며 상태를 계속 체크했다.





 ‘우두둑’

홀드를 오르다가 착지를 잘못해 발목에서 난 소리.

매트 밖에 앉아있던 강사님한테도 소리가 들렸다고 하니, 꽤 큰 '우두둑'이었나 보다.


매트에 누워 발목을 잡고 쓰러졌다. 나를 둘러싸고 직원들이 달려들었다.


슬쩍 보니 발목이 퉁퉁 부어올랐다.


매트에 누워 119를 기다리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

‘내일 출근할 수 있나’

‘우리 애들 어떡하지’

‘수업 보강은 누가 들어가지’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금방 119가 왔고 근처 정형외과 응급실로 갔다.



엑스레이를 찍고 진단을 듣고

교무부장님과 교감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무소식이 희소식인데, 오밤중에 유소식에 비소식이다.




금요일 아침

통증이 심해 출근을 포기했다.

개학 후 일주일 만에 이게 무슨 일인지.


진단은 인대 부분파열에, 미세 골절이었다.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는 의사 선생님과는 다르게 종아리까지 퉁퉁 부은 발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렸다.


생각보다 붓기가 심해 물리치료를 받고 입원해서 하루 요양하기로 했다. 다음 주에는 무조건 출근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 주말은 치료와 회복에 전념해야 했다.



그날 오후

아이들 하교시간에 맞춰 학급 단톡방에 사정을 얘기했다. 월요일에 목발 친구와 함께 갈 거라는 소식도 함께.

아이들은 내 톡을 보고 많은 느낌표들과 각자 갖고 있는 이모티콘으로 최선을 다해 걱정해 주었다.



그날 밤

부장님이 전화 오셨다. 보강도 급식지도도 다 해줄 테니 일주일 더 푹 쉬고 오라는 장난 반스푼 진심 반스푼 다정한 잔소리에 그저 감사하고 면목이 없었다.


나 때문에 학교에 빈자리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 울적했다. 물론 학교가 나 하나 없다고 안 돌아가진 않겠지만, 결국 누군가는 빈자리를 느끼고 또 채워야 한다.




복잡한 생각 따위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아주 무시무시한 체외충격파치료를 받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나오는 신음을 참느라 혼났다.


목발 짚는 연습을 해봤다. 학교에서 이렇게 뒤뚱뒤뚱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기고 민망했다.






아무도 없는 병실에 누우니 생각이 많아졌다.


개학 준비, 수업 준비, 교사 모임 활동을 하느라 입에 혓바늘이 돋았다. 그러면서도 괜히 운동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풋살 시합에, 클라이밍까지.


마치 저 먼 백 미터를 앞뒤도 안 보고 혼자 달리는데

나를 지켜보던 누군가 ‘너 지금 너무 과해. 멈춰.’라고 호루라기를 분 것 같다.


오랜만에 멍을 때렸다. 책도 읽고 브런치스토리에 다른 작가 글도 읽었다. 그동안 바빠서 못 봤던 좋아하는 유튜버 영상도 실컷 봤다.






교사가 된 후 3월은 늘 바쁜 달이었다.

가능한 한 빨리 움직였다. 종 치면 빨리 교실을 나가고, 가능한 한 빨리 종례를 했다. 업무 파악하느라 수업하느라 행정 처리하느라, 아이들과 얼굴 보고 대화할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렇지만 올해 3월은 조금 느려질 듯하다.

느리게 걷는 김에 교실을 좀 더 둘러볼 시간이 생겼다. 새 학기라 혼자 있는 아이는 없는지. 아이들은 아침에 뭘 하는지. 교실에 필요한 물건은 없는지.


내가 교실에 있으니 아이들도 다가와 말을 건다.

목발덕에 천천히 마음에도 조금 여유를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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