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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Feb 17. 2024

내향형에게 ‘뻔뻔함’이라는 이슈

나의 예맨 친구 ‘마루왕’


23살 여름,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됐다.

예정된 기간은 1년. 이민용 캐리어를 샀다.

옷, 신발, 라면, 짜파게티, 엄마의 반찬을 꽉 채웠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밤 캐리어를 닫을 때 불안, 긴장, 낯섦, 외로움, 두려움만 가득한 기분이었다.


‘진화’라는 작은 도시로 갔다.

절강사범대학교에서 일 년을 지냈다.

프랑스, 우크라이나, 마다가스카르, 미국, 일본 등 여러 국적의 친구들을 만났다. 다른 시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중국어를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한날한시에 모였다. 그곳에 모인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인종, 나이, 학력은 모조리 무시했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 왔다는 용기와 도전. 그 공통점 하나로 친해졌고 의지했다.


자는 곳, 먹는 것, 주변 사람들 모든 게 낯설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나’는 여전했다.


길을 걷다가 현지 학생들이 “니스한궈런?” 한국인이냐며 친해지자고 다가온 적이 있다. 현지인 친구가 고팠던 나에게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워스한궈런!”하며 뻔뻔하게 내 번호를 알려줬어야 하는데, 그 ‘뻔뻔함’ 이 어려웠다. 내향형이 낯섦에 ‘뻔뻔함’으로 맞서기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나의 예맨 친구 ‘마루왕’을 소개하면

마루왕은 남자고 얼굴이 까무잡잡했고

눈썹이 아주 진했다. 아! 키가 나랑 비슷했다.


마루왕은 중국어를 못했다. 특유의 성조가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절대 주눅 들지 않았다.

늘 학교 곳곳을 돌아다녔다. 어느샌가 옆에 나타나 “쉬찡~” 내 중국 이름을 불렀다. 눈이 마주치면 먼저 말을 건넸다. (일부러 눈을 피한 적도 많다.) 문장으로 표현이 안되면 단어 하나라도 말했다. 어떤 때는 소망울 같이 큰 눈으로 얘기할 때도, 손짓 발짓으로 얘기할 때도, 그냥 말을 포기하고 허허 웃으며 갈 때도 있었다.


마루왕이 점차 어려운 단어를 구사하고 문장으로 유창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마루왕의 ‘뻔뻔함’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이고 학생이고 배우는 중이다. 중국어를 못해도 아무렇지 않아도 된다.


마루왕처럼 뻔뻔해져 보자!


-중국인 친구의 친구 결혼식 참석하기

-새해 중국인 친구 집에 놀러 가 가족들과 만두 빚기

-버블티를 사 먹다가 나오는 노래가 좋아 직원에게 노래 제목을 물어보기

-영화관에서 내 자리를 뻥뻥 차는 뒷자리 중국인 아이에게 조심하라고 말하기

-혼자 침대 기차 탔을 때 같은 칸 중국인들과 꽈즈(해바라기씨)를 먹으며 수다 떨기


긴장감은 여전했지만, ‘뻔뻔함’이 조금은 익숙해졌다. ‘뻔뻔하게’ 중국 생활을 하며 중국어도 늘었다.

대학 생활 사 년 육 개월 중 중국 생활 일 년.


사분의 일도 안되는 시간이지만 그 덕에 우물 밖 개구리를 제대로 경험했다.


그곳을 떠날 때, 택시를 타고 막 학교 교문을 나갈 때, 마루왕이 달려와 택시를 세워 마지막으로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이루핑안, 쭈의 션티, 시아오신간마오 등등 배운 중국어를 총동원해 서로의 평안을 빌어주었다.


지금도 ‘뻔뻔함’이 필요할 때, 가끔 마루왕을 생각하며 웃는다. 나의 예맨 친구 마루왕, 짜이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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