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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Feb 20. 2024

임용고시, 1차는 쉬웠어요.

'잘하는 것'에 더 집중하면 '못하는 것'은 그냥 그뿐

임용고시 2차 시험 준비를 하던 어느 일요일,

부랴부랴 노량진 학원을 갔다. 그날은 면접을 준비하는 날이었다. 선생님과 1:1로 마주 보고 앉아 15분 동안 답변을 해야 했다.

제발 입에서 정답만 술술 흘러나오길!

면접지를 보고 나오는 건 눈에서 눈물, 코에서 콧물 뿐이었다.


2016년에 본격적으로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임용고시는 1차, 2차 시험이 있다. 1차는 필기시험, 2차는 수업 실연과 면접이다. 1차 시험 준비 기간은 11개월, 2차 시험 준비 기간은 2개월이었다.(1차가 끝난 후 2차까지)


학창 시절에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해 왔던 터라, 요즘 말하는 ‘자기주도학습’이 몸에 익었다.

책상에 앉아 계획에 따라 성실하게 공부했다.

내용을 암기하고 기출문제를 풀고 단권화로 정리했다.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등수가 올라갔다.

나중엔 전체 10등 안에 꼭 내 이름이 있었다.

공부 방법이 맞았다는 생각에 더 신났다.

1차 필기시험은 컷에서 10점이 넘는 점수로 합격했다.


아마 제목을 보고 화가 나서 들어오신 분도 계시겠지.

1차 필기시험이 쉬웠다는 건, 난이도가 쉬웠다는 게 아니다. '혼자, 조용히, 앉아서' 공부하는 게 익숙했다.

그래서 쉬웠다.


2차는 '다른 사람들과, 큰소리로, 서서' 해야 했다.

수업실연은 앞에 학생들이 있다고 가정하고 연기하며 수업해야 하고 면접은 순발력을 발휘해 모범 답안을 만들어야 했다. 살쾡이 같은 눈빛의 평가자들 앞에서 말이다.


휴 제일 약한 분야다. 익숙지 않은 방식에 억지로 빨리 익숙해져야 하니 금방 한계에 부딪혔다. 칠판 앞에 서면 긴장했고 앞에 평가자들을 보면 목소리가 작아졌다. 머릿속 말이 꼬여 나왔다. 재미없고 어려웠다.


선생님 앞에서 눈물, 콧물 흘렸던 이유였다. 선생님은 그날 면접지를 덮고 얘기를 이어가셨다.

"서정 씨, 1년 동안 봐오면서 서정 씨처럼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공부하는 학생은 오랜만에 봤어요. 큰 강의실에서 50명이 넘는 학생들과 수업해도 서정 씨가 즐거워하면서 공부하는 게 눈에 보였는데 지금은..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서정 씨가 잘하던 거 잘하기만 하면 돼요."


며칠 후 수업 실연 연습 날이었다.

'맛'을 가르쳐야 했다. 학생들에게 간식으로 사탕을 주는 상황으로 '맛'을 설명했다. 레몬맛 사탕-시다. 홍삼맛 사탕-쓰다. 딸기맛 사탕-달다.


실연을 끝내고 나왔다. 다음 순서인 학생이 문 앞에서 대기하면서 내용을 엿들었나 보다.

"수업 실연 진짜 잘하시네요. 사탕으로 설명한 게 너무 재밌었어요."


'잘하던 거 잘하면 된다'라는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꼼꼼하게,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걸 잘했다. 

조원들과 함께 학교에 들어간 거의 모든 출판사의 교과서의 파일을 구했다. 자주 나오는 단원 주제를 파악하고 그 주제부터 수업 연구를 시작했다.


아이디어 내는 걸 좋아했다. 

색다른 사례를 붙인다던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다던가. 답을 구상할 때 여느 문제집에나 나오는 모범 답안도 외우고, 내 아이디어가 들어간 답안도 꼭 한두 개는 만들었다.




여전히 목소리는 염소처럼 파르르 떨렸고, 목소리는 확성기처럼 크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잘하는 것에 집중하니 자신감이 생겼다. 못하는 것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 날 잘해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애쓰진 말자.


'잘하는 것'에 더 집중하면 '못하는 것'은 그냥 그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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