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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Mar 04. 2024

이번생은 교사라서

따갑디 따가운 신규의 기억



2017년 3월 첫 학교에 부임했다.

중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았다.


아이들도 처음이고,

나도 처음이다.


신규교사 연수에서 받았던 두꺼운 자료를

가방에 제일 먼저 챙겼다.


마치 만능 정답지를 가진 것처럼 든든했다.




어색한 하이힐을 신고 카키색 원피스를 입었던 첫날.


지하철을 타고 네이버 지도를 보며 한참 걸어갔던 첫 출근길.


오랜만에 신규가 왔다며 귀여운 눈빛으로 바라봐주셨던 첫 선배교사들.


4층 1학년 부라고 적힌 작은 별실, 4개의 책상과 가운데 동그란 탁자가 있었던 첫 부서.


벌써 7년 전인데, 아직도 참 생생하다.






나에게 ‘신규‘란..?


뭔가… 따갑다. 따가운 기억이다.



따라 하기 바쁜 신규였다.

 '이 활동을 하면 좋다던데', '중간고사 보려면 진도 빨리 나가야 하는데', '애들을 휘어잡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던데', '공문은 이렇게 쓰라는데', '품의는 이렇게 올리라는데'. 하는 데로, 보이는 데로, 들리는 데로 따라 하기 바빴다.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다. 같은 부서에 경력 10년 차 선생님이 계셨다. 그 선생님은 말 그대로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필요할 땐 아이들에게 소리도 지르고, 화도 내고, 학급 규칙이나 청소를 엄격하게 지도하셨다. 아이들이 꼼짝을 못 했다.


내심 부러웠다.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꼼짝 못 하는 모습. 내공 0의 신규는 감히 가질 수 없는 카리스마라고 생각했다.


'나도 저런 카리스마!'. 곧장 따라 했다.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떠들면 곧장 소리 질렀다.

청소를 제대로 안 하면 곧장 화를 냈다.


그러기를 며칠 후 집에 갔더니 목이 따가웠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따라잡기를 그만두었다.



학급 경영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선배 교사가 하는 게 멋있어 따라 해 봐도

결국은 내것은 아니더라.


학교에서 갖가지의 상황을 부딪혀보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즐거워도 해보고 실망도 해보고

절망도 해보며 진짜 내 것이 만들어진다.



낯이란 낯은 다 가리는 신규였다.


학교는 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

40명의 동료 교사들과

두 학년을 가르쳤으니 약 300명의 학생들 그리고 그들의 학부모님들.


신규 교사의 모든 처음을 지켜보고 있는 그 눈빛이 따가웠다. 눈빛을 즐기는 자가 되었어야 하지만, 왠지 그 기대치를 채워야 할 것만 같은 마음에 선뜻 그러지 못했다.


내 생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오랜 시간 동안 하나로 이끌어가 본 적이 없다.


가끔 버겁기도 했지만 그래도 잘 버텼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따라와 줬고 동료들은 생각보다 다정했기 때문이다.



선생님도 선생님이 처음이라

그해 여름 수련회 첫날밤

얼굴에 피를 흘리고 있는 우리 반 학생을 마주했다.


장기자랑을 마치고 밖에서 풍등을 날리는 일정이었다. 우리 반 학생이 강당에 두고 온 안경을 가지러 다시 들어가려고 뛰어가다가, 앞을 잘 보지 못하고 그대로 유리에 박았다.


그 순간 한 벽의 유리가 와장창 깨졌다.

유리 조각들은 우리 반 학생의 얼굴을 긁었다.


유리가 박혀 피가 흐르는 그 애의 얼굴을 보니

내 마음에도 유리조각이 박혔다. 마음이 따가웠다. 


학부모님과 정신없이 통화를 하며,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갔다. 새벽까지 병원에서 학부모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아이에게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새벽에 지방까지 한걸음에 내려오신 학부모님께

어떤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해야 할지.


돌아가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아이들도 나도 늘 삐뽀삐뽀 위기 상황에 빠진다.

그때마다 더 나은 조언과 해결 방법을 생각해 내고

아이들이 아프지 않게 늘 지켜주고 싶다.


하지만 선생님도 선생님이 처음이라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신규 교사의 그 해는 따갑디 따갑다.


신규 때의 기억이 앞으로의 교직 생활에 길잡이가 된다고 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망'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 보니 서툴러도 진심이었고 있는 힘껏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이 졸업해서도 찾아오고, 지금도 연락이 종종 오는 거 보면 최소 '망'은 아니었나 보다.


여전히 부족하고 늘 방황하는 중이지만,

올해 8년 차 그래도 나름 경력이 쌓였나 보다.


여느 사건 사고에 침착하자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내 개인적인 얘기도 하며 말도 안 되는 유머도 날려본다.


이것저것 내 손길이 탄 수업과 활동도 하나 둘 늘어간다.


하루, 한 학기, 일 년을 교실에서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데 힘쓰고 싶다.


이번생은 교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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