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에 될지, 삼수에 될지, 백수에 될지 아무도 모른다.
2015년 1월 비 오는 날 지하철을 타고 일산으로 갔다. 지하철역에서도 한참 걸어가 한 중학교에 도착했다.
교실에 들어가니 세분의 선생님께서 앉아 계셨다.
세분의 선생님께서는 돌아가며 질문을 했다.
학교 경력은 하나도 없나요?
담임을 맡을 수는 있나요?
집이 서울인데 일산까지 어떻게 다니려고요?
졸업 직후라 학교 경력은 하나도 없고
담임 맡을 수는 있지만, 뭘 하는지 몰랐고
집은 서울인데 큰 이모가 일산에 살아서 큰 이모네서 지내며 출근하겠다고 대답했다. (사실 큰 이모는 서울 신림동에 사신다. 간절한 마음에 그만 거짓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처음이라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음날, 전화가 왔다. 일산의 그 중학교였다.
어라? 보통 불합격 문자가 띡 오는데, 왜 전화가 오지? 설마 했던 기대는 금방 실망으로 바뀌고 이내 감동이 되었다.
“선생님, 너무 아쉽게도 모시지 못했어요. 담임 조건 때문에.. 근데 선생님은 아마 잘될 거예요. 마지막 질문에 열심히 하겠다고 대답한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었거든요. 그 말을 기다렸는데 선생님만 해주시더라고요. 그러니 지치지 마시고 힘내세요. 더 좋은 학교 꼭 갈 거예요.”
전화를 받은 그때도 학교에 있었다. 여지없이 면접에서 광탈하고 나오던 중이었다. 같은 불합격 통보에도 이렇게 온도가 다르다니.
아마 그 일산 학교가 육십몇 번째 이력서를 넣었던 때쯤이 아닐까. 서울, 경기도, 세종까지 구인 공고가 올라오면 족족 이력서를 써서 보냈다.
열 군데를 내면 한 군데는 면접 연락이 왔다. 다행히 학교마다 거의 비슷한 질문을 해서 나중엔 대답이 술술 나왔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자꾸 불편했다.
‘경력은 없지만 그래도 나를 뽑아주세요’ 하며 부탁하고 사정하는 염치없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간제 교사 도전기가 참패의 결말로 치닫을 때 일산의 그 학교를 갔던 것이다.
온몸에 불합격 딱지를 받고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혼자의 시간을 보내며 잠시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도 일산 그 학교 그 선생님의 말에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해볼만큼 해보자! 하고 다시 이력서를 넣었다.
3월 개학을 앞둔, 2월 넷째 주에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합격 전화를 받았다.
후에 노트북을 정리하다 폴더를 열어보니 97건의 이력서가 남아있었다.
가끔 학생들에게 ‘기간제 교사 97수 도전기’ 얘기를 해준다. 재수에 될지, 삼수에 될지, 백수에 될지 아무도 모른다. 백수에 되더라도 기어코 해내는 ‘성취 경험’이 중요하다. 치열하게 몰입하고 노력해서 결과를 이뤄본 경험이 후에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나게 하는 자신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