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짧고 손도 작은 아저씨의 이야기...
명절을 맞아 대청소를 하면서 다시금 신발장을 열었다. 저 위쪽에 1년 넘게 안 신었던 신발 두켤레가 눈에 들어온다. 갈색 락포트 정장구두와 브룩스 운동화. 생각해보니 지인찬스와 직구로 가격이 매우 합리적이었기에 구매를 한 기억이 났다. 하지만 연식이 이미 7~8년이나 되었고, 밑창도 깨끗하긴 하지만 '남이 이미 신은 신발'이라는 자국도 선명했기에 중고로 팔기는 쉽지 않겠네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를 할까?' 라고 생각하다가 '그래도 긴 명절 연휴, 당근 어플을 자주 보는 누군가는 이 신발들을 살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에 사진들을 찍어 올렸다.
"그래, 기증하는 것도 방법인데, 당근에서 팔리면 그래도 좋지." 라는 아내의 말에 힘을 얻었다.
다음날 오전, 운동화가 먼저 입질이 왔다. 자전거를 타고 우리 집 근처로 오시겠다 한다.
종이가방에 운동화를 넣으며, 새 주인을 만나 밝은 세상을 많이 봐라..라며 중얼거렸다.
브룩스 운동화를 사러 오신 건 의외로 나보다 최소 5살은 많아 보이는 아저씨였다.
젊은 감각의 아저씨에게 이 신발이 훨씬 더 잘 어울릴 거 같다.
현금을 손에 꼭 쥐어준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그대로 사라지셨다.
기증하려던 운동화를 팔고, 1만원을 손에 쥐니 꽁돈이 생긴 느낌이었고, 상가의 토스트집에서는
버터와 토핑향이 퍼지면서 손님들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대학시절, 배고픈 등학교길에 1~2천원에 사먹었던 토스트 가격이 4,700원이다.
'아 토스트 2개 사면 남는 게 없고, 3개를 사면 밑지는 장사인데...'
'나는 토스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식사 전 간식으로는 하나 정도면 부족한 듯 적당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맛있어 하면 '정장구두도 팔아서 그 돈으로 사줘야지.' 라고 합리화를 했다. 그렇게 봉지에 토스트 하나를 포장해 집으로 갔다.
"아이고, 남자가 이렇게 손이 작아서 어쩌나?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손이 큰 대인배 아내가 성화다. 나는 실제로도 키에 비해 손이 작은 편이고, 팔도 짧은 편이다.
'아놔, 버릴까 하는 신발 팔아서 현금흐름 만들고 또 토스트까지 사왔는데, 왜 이래 정말?'
이라고 생각하면서도...주섬주섬 토스트를 4등분하며
"아, 그러네. 생각해보니 양이 얼마 안 되네. 식사 시간 전이라 맛만 한 번 보라고...
맛있으면 이따 다시 사올께." 라고 나의 작은 손과 입은 열일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가족들은 점심을 먹어야 했기에, 토스트가 많건 적건 별로 신경을 안 썼다.
그리고 연휴의 마지막 날에 정장구두도 당근에서 팔렸고, 이 꽁돈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뭔가 해보려던 내 계획은 첫째가 사달라는 하겐다즈, 둘째가 사달라는 몰랑이, 아내가 사오라고 하는 커피로 모두 탕진했다. 아직 나의 그릇은 나의 작은 손만큼 ... 작은 그릇인 거 같다. 부자의 큰 그릇을 가졌더라면 애초에 기분좋게 당근에서 생긴 현금은 가족들에게 기분좋게 쓰지 않았을까? 그렇게 아낀 몇 천원으로 어차피 뭘 하지도 않을 건데 말이다. 천원짜리를 모아 만원을 만들고, 그걸 또 모아서 10만원, 100만원... 이 생각만 하고 있었기에, 1만원이 주는 소소한 행복을 무시했었나 보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본인 그릇에 맞는 만큼의 '돈'을 모으고 불린다는 것이고, 그 그릇은 평소 어떤 규모와 수준의 돈을 다뤄봤느냐이다.' 라는 내용을 책에서는 읽었지만 정작 생활 속에서의 나는 종이컵만한 그릇으로 무얼 하고 있나 싶다. 돈을 벌고 모으는 이유가 가족들과 즐겁기 위해서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