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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ewell to Basketball

신발장을 정리하며...

by 엠제이유니버스

"나 당근 거래 좀 하고 올께. 안 신는 신발 팔려고... ..."

"안 그래도 정리 좀 하라 할라 했는데, 당근에서 잘 파네."


코로나 시절, 테니스를 겁나 잘 치는 친구가 친히 테니스를 가르쳐주겠다며... 유일한 준비물은 테니스화라고 했다. 일반 운동화를 신고 테니스코트를 밟으면 안된다는 게 그 친구 말이었다. 친구들 서너명이 그렇게 테니스화를 사서 모였고, 테니스왕의 강좌는 테니스장의 폐쇄와 함께 막을 내렸다. 그리고 테니스화는 신발장 구석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아, 저 테니스화를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라는 것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다.


다행히 이 녀석은 새로운 아저씨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잘 구매했소."라며 악수까지 하고 가시는 아저씨 덕에 괜히 기분도 좋아지는 그런 저녁이었다.




테니스화 옆에 놓였던 '농구화'가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Thank you Basketball'이라는 마이클 조던이 NBA를 은퇴하며 썼던 편지를 보며 울고 웃었던 청년이었건만... ... 고등학교, 대학교, 첫 직장, 두번째 직장, 친구들, 선후배들이랑 많은 농구팀을 거치며 유니폼도 10개가 넘은 아저씨 선수가 되었다. 그 유니폼들을 얼마전 모두 버렸다. 아들이랑 집앞 코트에서 운동을 해보니 무리를 하면 다칠 거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예 옷과 장비가 없어야 무리하지 않을 거 같았다.


이태원 나이키와 아디다스 매장에서 내 시야에 걸렸던 마지막 농구화. 그 때는 달리기도 잘했고 점프도 잘했으며 심지어 슛도 잘 넣었다. "아빠가 대학교 때 말이야. 대회에서 우승도 하고 MVP도 받고 그랬어. 뭐 회사 다니면서도 직장인 농구대회에서도 우승도 여러 번 하고 MVP도..." 라고 자랑할라치면 "아빠, 또 라떼~." 라고 받아치는 아이에게 더 할 말이 없다. 지금은 그 때처럼 점프하지도 달리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검빨간 농구화를 들고 10초 정도 고민하다 농구화와도 아름다운 작별을 하기로 했다. 몇년전 KBL 중흥을 위해 허재, 문경은 등 시대를 풍미했던 농구선수들이 올스타 경기에 출전한 걸 보았다. 아저씨가 된 그들이 코트에서 뛰는 모습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만큼 농구는 격렬하고 몸이 준비되었을 때 해야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왼손잡이 아들에게 정대만(또는 신준섭)처럼 멋진 왼손 슛폼을 알려주었고 (왜 친구들처럼 자기는 양손으로 쏘면 안되냐는 푸념을 꽤나 오래 들었지만, 지금은 자기가 가장 멋진 슛폼이라고 오히려 감사하기도 한다) 나도 정말 어렵게 배웠던 오른손/왼손 레이업까지 아들에게 가르쳤으니 이제 내 소임은 다한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아재 한 명이 이제 농구 안하나보다.' 일 수 있지만, 감성적인 아재에게 농구는 정말 중요한 스포츠이다. 폭력과 야간자율학습이 난무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만이 최우선 가치였던 그 시절 유일한 탈출구는 농구였기 때문이다. 미팅, 소개팅도 다 마다하고 미친듯이 농구만 했으니 이제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게 어리석을 수 없지만, 그렇게 농구에 미친 덕에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친구들을 모두 농구코트에서 만났다. 우리는 이제 농구를 더 이상 함께 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담배피면 체력 떨어질 것을 걱정하는 아재들이 되어 아이들과 아빠 어디가 여행을 간다. 또한 터프하고 격렬한 코트에서 룰을 준수하며 뛰어다녀서인지 반칙과 꼼수를 싫어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게도 되었다. 그리고 코트에서 흘리는 땀방울과 이를 악물고 버틴 연습의 결과물이 경기에서 승리로 이어진다는 덕목도 배웠으며, 연습과 시합 때 무지하게 뛰어다녀서인지 체력도 좋아서 맘만 먹으면 밤샘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구매한지 10년도 더 된 검빨 농구화와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다시금 나의 농구와도 작별을 고했다. "Good Bye MJ's Basketball" 여전히 마음은 농구코트를 전력질주하고 덩크도 할 수 있을 거 같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은 아니야 라고 말을 건넨다. 이렇게 삶의 변화를 하나씩 더 받아들여야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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