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본적은 '섬'이다. 육지 끝에서 배를 타고 20여분 가야 했던 그 곳. 지금은 대교가 놓여 있지만 여전히 내 마음 속에는 멀게 느껴지는 섬. 아버지는 섬에서 태어나 자라셨고, 중학교 때부터 육지로 이른바 유학을 오셨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온동네 사람들이 같은 성씨인 그 마을의 우리 할아버지 댁에 가면, 사촌형들, 삼촌들은 낚시배를 타고 나가기고 하고, 바닷가에서 헤엄을 치며 노는 모습이 많았다. 하지만 난 물을 무서워해서 들어가지 못했다.
큰이모 댁은 부산이다. 지금은 해운대 앞, 내가 어렸을 때는 광안리 해수욕장 앞이었다. 여름방학 때는 이모네 집에 자주 보내졌다. 이모댁의 사촌형 2명은 이미 대학생이었고, 우리 집 삼남매 방학 시즌에 나는 이모네에서 여름을 보내곤 했다. 형아들은 광안리 해수욕장에 자주 날 데려갔고, 나는 여전히 물을 무서워해서 광안리 해수욕장을 즐기지 못했다. 백사장을 걷거나 모래 놀이만 하고... ...
그랬던 내가 20살이 넘어서야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교 후문 앞에 새로 구립 문화센터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한 근육맨인 친구 한 명과 등록을 했다. 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1년여를 친구와 함께 수업을 듣고 수영하고 치맥도 했다. 어느날부터 강사선생님이 일주일에 하루는 오리발을 가져오라 하셨다.
호기롭게 나와 친구는 "저희는 학생이라 사기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냥 한 번 해볼께요." 라고 했다. 그리고 그 날 체력의 한계를 여러 번 느꼈다. 힘들긴 했지만 오리발을 사지 말고 매주 체력훈련하는 거라 생각하자 했다. (요즘 수영을 다시 하며 되돌아 보니 정말 미친 놈들이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나를 키운 것은 8할은 농구였다. 주말 아침에 깨자마자 친구들과 집 근처 고등학교 농구코트에 가서 흙먼지를 날리며 하얀 티가 물들 때까지 뛰고 또 뛰었다. '공부 공부 공부'를 강조/강요했던 고등학교에서 유일하게 숨쉴만한 곳은 농구코트, 농구동아리였다. 대학교 때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는 대신 농구동아리에서 뛰고 또 뛰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다 대학 4학년 초에 갑자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근육질 몸매를 만들고 태닝을 해야지.' 라는 생각은 애초에 없는 멸치같은 몸이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농구를 하다 발목을 심하게 다쳐 찾아간 한의원에서 들은 이야기가 날 수영으로 이끈 게 아닌가 싶다.
"아 발목이 엄청 심하게 접질렸네요."
"어, 저는 농구를 엄청 좋아하는데, 뛰다가 발목을 접질렸어요"
"음. 제가 보기엔 농구가 엠제이씨 몸에는 안 맞아요. 농구를 많이 하면 허리가 아프지 않아요?"
"네네. 다치지 않았는데도 농구를 심하게 하고 나면 허리 통증이 있어요."
"체형이나 체질적으로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이 좋지는 않아요. 오히려 수영이 체질에 더 맞습니다."
신기한 건 그 뒤로 내가 몸담은 곳에는 늘 수영장이 있었고, 별 의식없이 틈틈히 수영을 즐겼다. 강원도 산골짜기 양구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그 곳에는 너무 시설이 좋고 사람은 적은 매우 훌륭한 수영장이 있었다. 전역 후 입사한 은행 사무실 바로 옆에도 수영장이 있고, 심지어 거래처라 수영장, 헬스클럽, 사우나 모두 패키지로 할인도 해주었다. 금융위기의 한 중심에서 공부하러 갔던 미국의 대학원에도 수영장은 늘 열려 있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자유수영은 몸에 큰 무리가 없었고, 마음도 한결 차분해짐을 느꼈다.
그 뒤로 다시 회사에 입사를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일상의 큰 변화가 생겼다. 농구를 하지 않으니 에너지 소모량이 줄어들었고 먹는 것도 별로 없는데 살이 찌고 있었다. 늦은 밤 야식을 먹으며 한 잔 마시는 맥주는 삶의 활력소이자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문화체육센터에 아이 수업을 위해 주말마다 방문했다. 아름드리 나무가 있고, 먼가 연식은 있지만 고즈넉한 멋을 갖고 있는 체육관. 어느날 체육관 리모델링 공고가 붙었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리모델링을 하면 '수영장 확장공사 & 강습인원 확대'라는 안내글.
'흠, 리모델링이 되면 수영 한 번 등록해볼까?' 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완공 예정일을 스마트폰 다이어리에 메모를 해두고 손꼽아 기다렸다. 주변에서는 구립 수영장 신청이 하늘의 별따기라 들었기 때문에 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마침내 수영장이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어렵게 수영강습 등록에 성공했다.
월수금 아침 6시!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한 번 부딪혀서 시도해보자 라는 생각에 옷장 어딘가에 넣어둔 수영복, 수영모, 물안경을 챙겼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