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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이 Oct 27. 2024

진보의 뇌와 호르몬



 길 건너편에 새로운 빵집이 생겼다. 


 출근길에 들러 커피와 크루아상 한 조각을 산다. 한입 베어무는 순간, 갓 구운 빵의 포근하고 고소한 향이 스퍼지고, 따스한 커피항에 언 몸이 녹아내린다. 바로 앞에 이런 맛집이 생기다니. 이제 아침을 굶을 일은 없어 보인다. 앞으로 매일 갈 거라 다짐한다. 


 빵집은 항상 맛집으로 남아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낮다. 


 도파민의 장난 때문이다. 


  도파민은 탄소와 수소, 산소와 질소 단 네 개로 이루어진 작은 분자이지만, 우리의 삶에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호르몬이다. 도파민은 동기를 부여하고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도록 도와주는 화학 물질이다. 하지만 중독의 원인이기도 하다. 도파민은 우리에게 행복과 성공을 가져다주지만, 우리를 나락으로 끌어내리기도 한다. 도파민은 축복이자 저주다. 


 남들보다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는 사람들이 있다. 도파민 수용체인 DRD4 유전자가 긴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새로운 것에 이끌리고 도전 정신이 강하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 짧은 연애 후 바로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 워커홀릭, 무언가 하나에 미친 사람들, 항상 산만하고 집중을 못하는 사람들... 삶의 양식은 달라도 이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같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갈구하게 만드는 미래 지향적인 호르몬, 도파민 때문이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는 증거가 바로 놀이다. 새로운 대상을 탐구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동시에 큰 기회다. 미지의 것을 탐험하려는 충동은 모든 포유동물이 가지고 있지만, 탐구욕이 더 강한 동물들도 있다. 뇌가 크고 복잡한 동물, 특히 넓은 영역을 가지는 동물일수록 놀이를 많이 한다. 놀이를 통해 다양한 기술과 사회성을 배우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평생 개미만 잘 핥으면 되는 개미핥기와 달리, 인간과 같은 비전문가들은 항상 다음 끼니를 걱정하면서 먹을 걸 찾아다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주변 환경 너머의 모든 가능성을 탐구하고, 우연히 찾아오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끊임없이 탐험하고 호기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새로운 것을 혐오하는 네오포비아이자, 새로운 것에 이끌리는 네오필리아가 되었다. 


엄마 보노보가 비행기를 태워주며 즐거워하고 있다.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놀이의 대가들이다.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작은 사람들은 또래친구만 있어도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고 즐겁게 뛰어다닌다. 동심은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한계를 넘어서라는 생물학적 명령이다. 공교롭게도 인간 역시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의 동심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를 유형성숙이라 한다. 


 어른들 역시 춤과 노래, 드라마, 소설 읽기, 스포츠, 캠핑 등 다양한 형태의 놀이를 한다. 노는 걸 죄악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놀이만큼 동물의 발전과 생존에 유리한 것은 없다. 호모 사피엔스가 성공을 거둔 것은 어릴 때의 반짝이는 호기심과 동심을 나이가 들어서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광적으로 낯선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로 진보주의자다. 진보의 생물학적 본질은 평생 새로움을 쫓아다니는 탐험가나 유목민이다. 도파민이 바로 그렇게 만든다. 


 인류가 익숙한 서식지를 떠나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된 덕에는 진보의 조상 덕이 컸다. 진보주의자에게서 도파민 수용체 DRD4 돌연변이 비율이 훨씬 높게 나타나는 게 그 증거다. DRD4 염색체 중 7R 대립유전자가 새로운 것에 유독 이끌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종 집단을 보면 알 수 있다. 인류의 발원지인 아프리카를 멀리 떠난 이들의 후손일수록, 대립유전자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난다. 도파민 7R 비율은 북미는 32%, 중앙아메리카는 42%였고, 남미 토착민 집단이 69%로 가장 높았다. 실제 인류의 이주 역사와 비례해, 1,600km당 4.3%씩 도파민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실험용 쥐에게 도파민을 투여해도 마찬가지다. 도파민 항진제를 투여하면 쥐의 활동량이 늘고, 낯선 환경에서 덜 움츠러드는 걸 볼 수 있다. 연구 결과는 도파민이 탐험 정신을 자극하여 인류가 세계 곳곳에 퍼지도록 만들었다는 가설과 부합한다. 

 

 낯선 환경에 정착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모든 것이 새로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고 먹지 않아야 될지, 야영지는 어디에 지어야 할지, 어디까지 사냥을 나가야 할지, 무기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할지, 이웃 부족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등등. 수많은 문제가 생긴다. 그럴 때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해 선택지를 늘리고, 새로운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종합한 정보를 논리적으로 추론해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렇게 호기심이 강한 성향을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라고 하는데, 실제 진보주의자들에게서 높게 나타나는 성격이다. 개방성은 지적인 열정과 정신적 유연성, 논리적 사고력을 만든다.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생활 방식, 행동을 빠르게 수정하고 배우는 능력, 불확실한 미래를 상관하지 않는 낙관적인 마인드가 진화적으로 큰 이점을 제공한 것이다. 


  물론, 타인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 낯선 곳에선 자원과 식량이 부족한 데다 후발주자기 때문에, 인접 부족과 경쟁하고 갈등을 빚는 것보다는 서로 어울리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유리하다. 경쟁이 일상화된 익숙한 환경에서는 타 부족과 싸워 승리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낯선 세계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안위에 관심을 기울이고, 힘들 때 도움을 주고 나중에 돌려받는 것이 이득이다. 매 순간이 변화무쌍했기에 지위와 권위는 별 쓸모가 없었다. 지배하거나 우위에 서려는 시도를 하면 욕을 먹기가 일쑤였다. 그보다는 갈등을 피하고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관대함이 더 좋은 평을 받았다. 진보주의자가 경제적 약자나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보편적 복지에 찬성하는 이유다. 


  단점도 있다. 어떤 문제에 몰두할수록, 주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약해진다. 사회적 추론과 비사회적 추론을 담당하는 신경체계는 서로 다르고, 대립적으로 작동한다. 도파민이 목적 달성을 위해 복잡한 개념을 이해하고, 미래를 상상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관심은 멀어지는 것이다. 도파민이 사회적 신경회로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파민 수용체의 밀도와 사회성 간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도파민 수용체가 많은 사람들은 감정 분리 지수가 높다. 스스로도 자신들이 냉정하고 남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인정한다. 도파민 덕분에 현재에는 관심이 없고, 미래의 문제 해결에만 관심을 가진 채 이성과 논리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역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사회정의와 사회적 책임에 관한 일이라면 나는 심장이 뜨겁게 타오르는 것을 느끼지만, 이상하게도 나 자신 외의 다른 인간과 부딪힐 일은 만들고 싶지 않다. 나는 인류는 사랑하지만 사람들은 싫다."


 도파민 유형의 인간은 사적인 관계보단 공적인 관계에 신경을 쓰고, 주변인들의 마음 상태에 공감하기보단 인류애라는 관념에 더 관심을 쏟는 면이 있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도파민을 주사하면, 진보주의자가 아니었던 사람들도 정의나 불평등 같은 단어들을 말하기 시작한다. 진보주의자들이 정의를 이야기하면서도 인간관계에 냉정한 이유다. 그 탓에 보수는 진보주의자가 모순덩어리라고 느끼게 된다.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보수주의자가 보기에, 두루뭉실한 사회 이야기를 하는 진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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