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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이 Oct 27. 2024

진보의 성격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하는 아침, 산티노라는 침팬지가 바삐 움직이며 구석진 곳에 돌을 쌓아놓고 있다. 관람객들을 향해 던지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동물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노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오직 인간만이 시간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믿음은 실시간으로 무너지고 있다. 침팬지 무리는 잘 익은 무화과를 먹기 위해 전날 밤 가는 길에 야영지를 만들고 다음 날 새벽 일찍 출발한다. 동물원의 오랑우탄이 나사와 볼트를 분해해 숨기면서 몇 주에 걸쳐 우리를 해체해 탈출을 계획하는 것도 발견되었다.


수화를 배운 침팬지 워쇼

 진실과 상상의 경계도 흐릿하다. 이제는 아름다움과 예술의 영역까지 동물들에게 넘겨줄 때가 되었다. 표현주의 작가 침팬지 콩고는 생전에 400점에 달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작품을 완성하기 전에 붓을 뺏으려 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창작이 끝나면 더 그리려 하지 않았다. 침팬지 카카마는 작은 통나무 조각을 아기처럼 어르고 재우는 인형극을 했고, 야생 고릴라가 이끼로 덩어리를 만들어 안고 있는 모습도 관찰되었다. 침팬지 워쇼는 수화로 '침팬지를 잡아먹는 크고 검은 개'가 두렵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런 개는 없었고, 그런 말을 수화로 배운 적도 없었다. 아이들이 어둠 속의 괴물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워쇼도 상상 속의 괴물을 두려워했다. 


 무엇이 유인원들로 하여금 거짓 믿음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걸까. 우리는 왜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소설과 드라마, 미신에 빠져드는 것일까. 현실과 비현실 모두를 포용하는 이점은 무엇일까.


 뇌가 발달한 동물의 특징이 있다. 바로 정신의 유연성이다. 큰 뇌를 가진 사회적 동물은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서열 경쟁, 사회적 관계, 먹이, 포식자 회피 등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행동 가능성을 탐구해야 하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감정과 느낌이 서로 뒤섞이고 확산된다. 이를 광범위한 연상이라고 한다. 


 광범위한 연상은 개방성의 심리적 기초다. 상어를 읽으면 바다와 물고기가 더 쉽게 연상되는 것처럼, 광범위한 연상은 세상을 자유롭고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상상력이 그 결과물이다. 현재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 해결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방성은 5대 성격특성 중 가장 신비롭고 설명하기 어려운 성격이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학자들은 문화성, 지성, 또는 경험에 대한 개방성 등으로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 개방성은 문화적 교양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신비롭고 영적인 정신 상태를 만들기도 한다. 수학과 과학, 철학 같이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를 돕거나 문학적 재능을 꽃피우게도 하고, 정치적으로 강경한 진보주의자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개방성이 좋은 쪽으로 작용하면 천재성과 창의력을 꽃피우게도 하지만, 나쁜 쪽으로 작용하면 광기와 정신병적 증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천재와 광인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은 꽤 일리 있는 말이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사고와 감정의 폭이 넓고 깊다. 지적인 이론, 최신 유행, 독창적인 관점에 흥미를 느낀다.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기를 싫어하고,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저항 정신을 가지고 있다. 물질적 이익이나 사교 생활에는 큰 관심이 없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탐구하지만 한 가지에 깊게 빠져들진 않는다. 또 환상과 공상에 잘 빠지고,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한 감수성이 높다. 에너지가 넘치는 락 같은 장르보다는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클래식 음악을 더 좋아한다. 자신의 내면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고, 복잡한 이론을 좋아하고 사색적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지루하게 느껴 못 견뎌하고, 항상 새롭고 잡다한 지식을 찾아 나서고, 문제를 해결할 땐 색다른 방법을 시도한다. 문화적 취향도 일반적인 드라마나 영화보다는 과학 잡지나 다큐멘터리같이 지식과 이론을 다루는 매체와 책을 즐겨 본다. 마음에 끌리지 않는 공부와 시험은 끔찍한 일이라서, 학업 성취는 과목에 따라 좋게 나오기도 나쁘게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은 모두 세상을 더 많이 경험하고 이해하고 싶은 욕구에서 나온다. 이들에게 공부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그래서 개방성이 높은 사람 중에선 학자들이 많다. 특히 인문학, 사회학, 영문학, 철학 분야처럼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분야의 대부분 학자들은 개방성이 매우 높은 동시에 진보주의자들이 많다. 


 개방성은 가치관과 관련이 깊다. 개방성 자체가 인식 범위를 결정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개방성은 세상을 넓은 범위에서 인식하게 해 새로운 것들을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 탐구하게끔 한다. 인간에게는 인식의 거리가 좁든 넓든 자신이 사는 세상을 탐구하고 체계화하려는 뿌리 깊은 욕구가 있는데,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일반적인 인식의 경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밖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개방성이 낮은 사람은 폐쇄적이거나 독단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불확실성을 좋아하지 않는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높은 개방성은 진보주의와 관련이 있고, 낮은 개방성은 보수주의와 관련이 있다.


  개방성은 유일하게 지능 지수와 관련이 있는 성격이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은 추상적 사고력과 관련된 유동성 지능, 언어와 지식이 포함된 결정성 지능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는다. 개방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우수하며, 특히 어휘력과 유창한 언어구사 능력, 연상력, 추상적 사고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 사례가 바로 작가들이다. 개방성은 시인이나 소설가를 만들어 낸다. 도파민 덕분이다. 도파민은 광범위한 연상과 확산적 사고를 촉진시켜 언어적 유창성과 풍부하고 독창적인 표현을 만들어낸다. 이는 구석기 시절에도 매우 유용한 능력이었는데, 억압에 맞서 대중을 설득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진보가 억압과 차별에 유난히 치를 떠는 것도 언어적 유창성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뛰어난 언어능력으로 독재와 억압에 맞서는 선동가였다. 은유적이고 독창적인 표현으로 혁명과 평등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대중을 설득해 온 것이다. 시인이나 작가들이 개방성과 도파민 수치가 높고 진보주의자들이 많은 이유다. 


 개방성은 정치적 영역에서도 두각을 드러낸다. 도파민이 인간의 행동에 어떻게 주도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잘 밝혀졌기 때문이다. 도파민 수치가 높으면 인식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권위나 질서, 전통과 도덕적 규범과는 멀어지게 된다. 대신 세상을 사회적인 틀로 바라보게 되며, 자연스럽게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당연히 소득 재분배 정책을 지향하고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물론 단점도 있다. 진보주의자는 자신이 사는 세계를 탐험하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평가하기도 좋아한다. 훨씬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정보를 분류하고 판단하려는 성향이 생기는 것이다. 한 실험에서, 진보주의자는 뭐든지 보자마자 평가하려는 욕구가 남들보다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정보를 체계화하려는 근원적인 욕구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착취와 억압 프레임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자본가 대 노동자, 강자 대 약자 등 선악의 시선으로 사회적 현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개방성이 만드는 심리적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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