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OMENT

초밥

운정 스밈

by 박규규

며칠 전 친구들과 다녀온 초밥집에 오늘도 다녀왔다. 부드럽고 따뜻한 한입. 입 안 가득 생선의 기름과 산미가 나름의 조화로 뒤섞여 저절로 미소와 콧바람이 흥건하게 내 몸을 감싸는 맛. 조금은 유난이다 싶은 표현이지만 나는 그랬다. 한 점 한 점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괜히 여러 번 더 씹어보고 입 속에 담아두게 되는 맛. 여하튼 그 맛을 또 느끼고 싶어서, 부모님도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서 오늘도 갔다.


혹여나 자리가 다 찼을까 걱정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다행스럽게도 자리가 딱 남아있었다. 꾸벅 목례 인사로 반겨주는 직원분이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해서 순간 당황했다. 어, 오늘도 오셨네요, 하는 인사에 귀가 살짝 뜨거웠으나 너무 맛있어서 또 와버렸다고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오늘 이후 당분간은 가지 않아야 하나 생각했다. 주문을 마치고 차왕무시(계란찜)가 나올 때까지 저번에 친구들과 먹었던 순간을 잠시 복기했다.


무던한 은이의 유난스러운 오두방정과 콧바람, 뭘 해도 귀여운 큰 슬라임 같은 원이의 팔짱 낀 채 내뱉는 감탄사, 나름의 페이스로 하나하나 미소를 곁들여 차근히 먹던 석이. 녀석들의 먹는 모습도 각기 달라 보는 맛도 더해졌었나 보다 생각했다. 가만 보자. 나는 어떻게 먹었었나 기억이 안 난다. 뭐 나도 나름의 표현을 더해 이 맛을 즐겼겠지. 사실 내가 제일 과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흥분하면 늘 표현이 커지는 나니까.


그럼 오늘의 맛을 표현해본다. 오늘은 식사 시간이 유난히 더 짧았다. 아는 맛이라 그랬을까. 하나하나 살펴보기보다 빠르게 구성을 훑어 입 속에 차근차근 쌓아 올렸다. 녹는 단맛. 숙성회의 물컹한 듯 녹진하게 남아있는 뒷맛. 입에 넣자마자 밥알이 입 속 전체에 고루 퍼지는 평온함. 중간에 톡 튀어나와 균형을 맞춰주는 고추냉이의 알싸함. 그리고 바삭하고 기름을 적당히 머금은 고소 짭짤한 튀김까지. 오늘도 완벽했다.


자소서나 리뷰 같이 바르게 정리되고 깔끔하게 정돈된 글을 쓰는 날이 많은 요즘. 백지가 꽤나 무섭다. 분명 머릿속에선 광풍과 함께 정리가 된 듯했는데 깜빡이는 커서를 보면 소화되지 않은 식사 마냥 가슴이 꽉 막혀 커피만 홀짝인다. 이렇게 내 일상의 단상을 잠시 적는 건 왜 이리 술술 적히는 걸까. 그리고 왜 나름 재밌는 걸까. 부족한 글이 나보다 나은 것 같다. 글은 언제나 실제 나보다 낫다. 나만의 귓속말. 보는 이가 없다고 생각하니 더 쉬운 걸까. 영원한 혼잣말. 그래서 조금은 솔직할까. 그래서 내일은 또 어떤 걸 쓰게 될까. 나도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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