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고 가볍던 공기가 제법 묵직해졌다. ‘포근하다’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사전의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도톰한 물건이나 자리 따위가 보드랍고 따뜻하다. 2. 감정이나 분위기 따위가 보드랍고 따뜻하여 편안한 느낌이 있다. 3. 겨울 날씨가 바람이 없고 따뜻하다.
‘포근하다’라는 단어가 갖는 뜻은 물론, 단어를 발음할 때 공기를 보내다 끝에 딱 잡아주는 듯한 어감이 매우 좋다. 요즘의 날씨가 참 포근하다. 아침, 저녁으론 아직 쌀쌀맞은 공기들이 거리를 차지하지만 한낮의 공기는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피게 한다. 이에 맞춰 적당하게 피어난 꽃들은 이 포근함을 더욱 피어오르게 한다. 요즘 끄적이던 글을 다시 뒤적이며 보았다. 꽤나 무기력한 나날이었음을 살폈다. 아직도 문득 내리쬐는 햇볕 아래 아스팔트에 놓인 금붕어처럼 무력하게 펄떡이지만, 포근한 공기 덕에 적당히 잔잔한 물안에서 유영하는 금붕어처럼 사는 듯하다. 이렇게 계절은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며칠 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목련을 보았다. 은은하게 져버린 태양 지나 짙은 바다색을 품은 하늘 사이 하얗게 별처럼 피어있었다. 어제도 피어있었나 곰곰이 생각하며 꽃을 살폈다. 몇 해 전 목련처럼 활짝 필 수 있다면 무참히 져버려도 좋을 것 같다고 SNS 썼던 순간이 떠올라 조금 웃었다. 필 준비가 꽤나 오래 걸리나보다. 잔뜩 웅크린 꽃봉오리를 보며 주먹을 포근히 쥐었다. 목련에 걸린 손톱달을 보고 즐겨 봄이면 꼭 듣는 노래를 들었다. 하루 종일 그대를 생각한다는, 요즘 사람들은 기다림을 모르고 너무 쉽게 헤어진다는, 멀게만 보이는 그대를 그리 쉽게 잊지는 않겠다는 마음을 노래하는 곡이다. 누군가에게는 봄이 기다림이고, 어떤 이에게는 희망이고, 다른 이에게는 웅크림이겠다.
벌써 4월이냐며 올해의 모습도 아닌 내년의 모습을 살피는 나를 포근히 다독인다. 즐거움이 가득한 지금을 굳이 놓치지는 말자고 속삭인다. 오지 않은 여름을 벌써 무서워하지는 말아야지. 적당한 날씨와 포근한 꽃들이 몽글몽글한 오늘을 만든다. 작게 피어올라 점차 한 덩이로 뭉쳐지는 두부를 만드는 것 같은 지금이다. 흘려야 하는 땀과 저어야 하는 노력이 왜 아름다운지, 그래서 꽃을 왜 아름답다 부르는지 오늘은 알겠다.
보아서 봄이고, 봄이니까 살피지.
다독이는 마음은 다시 피어나게 하지.
피는 마음과 지는 마음은 다를까.
뭉근히 끓는 마음이 모여 활짝 필까.
봄이라 흩날리는 꽃잎에도 흔들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