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눈 뜨고 나니 퇴사 요정이 되었다.
첫 번째 이직 이야기를 아직 안 읽으셨다면!
0.
올해 8월, 나는 1년 반을 몸 담은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나의 두 번째 회사였으며, 숨 가쁘게 일을 하다 보니 벌써 경력 3년 차가 되었다. 이번 퇴사는 저번 퇴사와 달라진 점도 비슷한 점도 있다. 달라진 점은 '준비성'이다. 이번 회사의 퇴사 준비는 입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 떠나도 아쉽지 않을 만큼' 후회 없이 일에 임하겠다는 자세와 '다음 스텝을 위한 계획'이다.
비슷한 점은 '마음가짐'이다. 미리미리 준비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소속감을 잃는다는 것은 정말 생소한 느낌이다. 어딘가에 속하지 못하고 혼자가 된다는 것은 언제 어떻게 느껴도 불안하다. 여담이지만 사업을 한다는 것도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혼자가 될 때에는 일상의 모든 순간들이 외롭고 무서워진다. 꼭 수익과 연결하려는 것이 아니더라도 사업하시는 분들이 자꾸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만드려고 하시는 것도 그런 욕구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01.
앞서 내가 '준비성'이 이전 퇴사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이직 할 생각은 없었다. 퇴사의 장점 중 하나는 잠깐 쉬었다 가는 타이밍을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휴직이 아니라 퇴사니깐. 그래서 난 내가 잠시 쉴 수 있는 기간도 '준비'했다. 아 그게 무슨 말이냐면, 이를 테면 '돈'이다. 물론 마음가짐도 준비했다. '불안해하지 말고 이 쉬는 기간 동안 최대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해보자.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돈을 버는 일이든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이든 뭐라도 시작해보자!'라는 것이다. 재작년에 퇴사를 했을 때에는 플랜 B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때는 재정적인 불안과 커리어의 단절이라는 초조함이 플랜 B를 마련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로 연결되었다. 그래서 그때는 '내가 했으면 좋았을 법한 일들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오만가지 생각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일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힌트도 조금 찾았다. 대신 지금의 고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 있을까?'에 가깝다. 혹은 '내가 정말 이 길로 가는 게 맞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 초조함은 확실히 덜하다. 스스로 소속감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초조함과 장래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이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고민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02.
나는 이 글이 일기장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사실 전에 쓴 글을 보면 하루에도 열두 번씩 글을 수정하고 싶으나, (낯 간지러움과 수치스러울 정도의 부끄러움으로 온몸이 간지럽다) 그때의 감정과 기억에 쓴 글을 지금의 상태에 맞춰서 수정할 생각은 없다. 하여 혹시라도 누군가 이전 글을 읽게 된다면 부디 '그때는 지금보다 더 철이 없고 어렸구나'하고 예쁘게 봐준다면 고맙겠다. 노파심에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면 그때도 지금도 난 그 어떤 것도 밉지도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대신 후회스러웠고 안타까웠다. 변명은 여기까지.
나의 '두 번째 이직생의 일기장'은 지금의 경험과 나의 지식들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믿고 쓰는 글이다. 이전의 기록은 '내가 왜 그만뒀냐면'에 가까웠지만 이번의 기록은 '혹시 당신도 그만두게 된다면'에 가깝다. 퇴사도 경험인지라 혹시라도 이 경험이 생소할 당신께 바치는 글이다. 어쩌면 지금도 진행 중인 이 '퇴사'라는 경험을 현실감 있게 옆에서 지켜보기도 하고, 그 속에 스며들어 있는 '나'라는 개인의 독특한 특이점을 발견하길 바란다. 참고로 내 글은 한국 주말 드라마와 비슷하다. 중요한 순간에서 끊긴다. 이건 개인적인 습관이니 그러려니 하고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혹여 이 전개가 답답하다면 좀 몰아서 봐도 좋을 것 같다)
03.
이전 회사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전 회사는 농촌 먹거리와 관련된 스타트업이었다. 참고로 난 농촌과 먼 사람이(었)다. 소도시를 사랑하며 전방 500m 이내에 편의점과 마트가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다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때는 작년 초, 이전전 회사를 퇴사하고 방황하던 시점에 이전 회사 대표님께서 식사를 할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평소에 약속을 잡아 밥을 먹을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전 대행사를 다닐 때 편하게 연락하던 사이어서 그랬는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물론 식사를 하기 전에 '현재 회사에 채용 공고가 있다'며 언질을 주시긴 하셨다. 이후 만났을 때 대표님은 꽤나 상세히 회사의 비전과 함께 하게 된다면 내가 담당하게 될 업무를 설명해주셨고, 그 설명은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기억을 되짚어보자면, 그분이 나에게 보여주셨던 신뢰는 너무나도 감사하고 감명 깊었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인간이 호감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그 진심은 어떤 경쟁자가 나타나도 질 수 없다. 이후 한 번의 만남을 더 갖게 되었고, 입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면 난 당시 난 농촌에 대해서 깊은 매력을 느끼진 못했다. 그게 내 입사 이유는 아니었고, 그때는 내가 하는 업무보다(예:마케팅 업무) 속해 있는 업이(예:농촌 먹거리) 내 커리어에 이렇게나 큰 영향을 줄지 몰랐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지금은 진짜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는 대표님도 내 생각과 같으셨나 보다. 난 입사한 지 4개월 만에 보직이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