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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Jan 09. 2021

아동학대보다 어려운 문제, 노인학대

노인학대 공익광고 제작기 - 문제를 생각해보다

2020년 연말에 <완벽한 아이>라는 실화 기반의 책을 읽고, 세상이 소설보다 더 끔찍할 수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2021년 새해의 시작부터 더 무자비하고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됐다. 바로 정인이 사건이다. 부적격의 부모가 자신들의 과시일지 모르는 욕망 때문에 아이를 입양하고 학대 끝에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학대의 과정은 너무도 참혹했고, 구조될 수 있었지만 결국 비껴간 모든 상황들은 너무도 안타까웠다. 소식을 접하고 수일째 충격이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범죄 중에서도 나의 감정을 건드리고 나를 특히 분노하게 만드는 범죄는 학대다. 아동학대, 노인학대, 데이트 폭력, 학교 폭력... 모두 불평등한 힘을 가진 관계로부터 학대는 발생한다. 힘을 가진 자가 힘이 없는 자를 억압한다. 이 그라운드는 싸움이 아니다. 일방적인 폭력이다. 외부에서 간섭하고 중재하기가 어렵다.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는 힘을 가진 자의 행동이 곧 룰이고 법이다. 학대가 시작된 순간부터 룰은 외부의 상식과 점점 멀어져 간다. 그 한계는 없다. 인간성이 타락한 정도라 하더라도 제동은 걸리지 않는다.


안 그래도 최근 노인학대 관련 공익광고를 제작하게 된 친구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노인학대에 대해서 조금씩 살펴보고 관심을 갖고 있던 요즘이었다. 노인학대에 대해 뉴스와 기사를 살펴보니 아동학대만큼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 많았다. 어쩌면 아동학대보다 더 해결하기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래 세 가지 이유에서다.


노인학대가 아동학대보다 해결하기 어려운 세 가지 이유


첫 번째는 학대행위자 유형 중 본인이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학대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고, 그 잘못된 관계가 행태로 드러나 알려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노인학대의 경우엔 스스로를 학대하는 '자기 방임'의 케이스가 있다. 배가 고파도 밥을 챙겨 먹지 않고, 아파도 약을 챙겨 먹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를 포기하고 방치한다.

YTN 뉴스에서 소개된 보건복지부 노인 학대행위자 유형 자료 (2016)

이런 경우 스스로 학대임을 깨달아 구제 요청을 할리가 없다. 또한 주위에서 누군가 상황을 알게 되더라도 학대라고 인지하기 어렵다. 아마 그 어르신에게 잘 챙겨 먹고 병원도 가시라고 조언을 할 수는 있어도 기관에 신고를 하진 않을 것 같다. 나도 이번 기회를 통해 알아보면서 본인 학대 유형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는데, 일반 사람들이 이런 개념을 가지고 신고를 하거나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두 번째는 구조가 되는 상황에서도 본인의지로 학대를 못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동학대의 경우, 주위의 신고로 학대의 정황이 드러나면 피해자의 분리 등의 조치가 바로 들어간다. 하지만 노인학대의 경우, 모든 정황이 확실하게 드러났다고 해도 피해자가 학대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아 구조가 되지 않는 일이 많다. 자신의 배우자나 자식들에게 학대를 받았다는 수치심, 이 사실이 알려질 것에 대한 수치심 때문이다. 나만 참으면, 나만 희생하면 가정이 깨지지 않고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해결될 찰나, 다시 학대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세 번째는 대중의 감정이 아동학대보다 노인학대에 공감을 덜한다는 점이다.

노인 학대에 대한 여러 기사와 뉴스를 살펴보며 좀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일부 뉴스의 댓글에서는 오히려 그럴만한 행동을 했으니 학대를 받는 것이 아니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아동학대 관련 뉴스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반응이다. 인간은 어린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보호 심리가 있어서 같은 학대인데도 반응이 다른 것일까. 아니면 아동에게는 없고 노인에게는 있는 젊은 시절의 삶을 학대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것일까. 이는 명백히 어불성설이다. 왕따 당하는 학생을 보고도 그럴만했겠지라고 생각하고 지나가버리는 것과 같다. 학대는 엄연한 범죄이다.


노인학대 문제에 대한 노력은 곧 나 자신을 위한 것


노인학대라는 문제를 해결하기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중요한 문제다. 우리도 언젠가 노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점점 출산율이 줄어 노령화되어가고 있다. 노인이 대부분인 사회가 오고 있고, 그 대부분은 곧 젊은 세대인 우리가 될 것이다. 또한 평균수명은 늘어가는 추세다. 노인으로 살아갈 나날도 우리가 더 길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노인학대의 문제는 지금 할아버지, 할머니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다. 지금 어르신들의 문제인 동시에 우리의 문제다. 노인학대 문제는 해결하지 않으면 곧 내가 처할 수 있는 문제다. 역으로 생각하면 젊은 세대가 이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 나간다면 개선된 사회와 상황의 이득은 곧 젊은 세대가 얻게 된다는 말이 된다. 노인학대의 문제는 우리의 부모님을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관심을 갖고 노력할 가치가 있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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