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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Jan 06. 2021

진정서

정인아 미안해 우리가 바꿀게

최근 알려진 정인이 사건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파 진정서를 쓰게 됐습니다. 글을 잘 쓰지 않아도, 엄벌을 바란다는 내용과 마음을 잘 담아 쓰면 된다고 하네요. 많은 사람이 쓰면 좋다고, '질보다 양'이라고 하더라고요. 진정서는 기한은 없고 재판이 나기 전이면 언제든 우편으로 보내면 된다고 합니다. 마음이 가는 분들은 다른 작가님 브런치에 진정서 보내는 방법이 나와있으니 참고해보세요.
https://brunch.co.kr/@book-kingkong/15




존경하는 재판관님.


저는 30대 중반의 직장인입니다. 저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습니다. 하지만 작은 한 생명에게 벌어진 이 참담한 일에 자격이 중요한 것 같진 않습니다. 한 사람에게 벌어진 어떤 잔혹한 일이 고의가 아닌 실수로 바뀐 것 같아 가슴 한 구석이 너무 답답하고 아픕니다. 마치 그 사람이 단지 어린 생명이었다는 이유로, 옳고 그름을 알 수 없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결국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 괴롭습니다.


같은 일이 성인에게 벌어졌다면 그 사람은 과연 죽음까지 이르렀을까, 가해자는 실수로 끝날 수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17개월 아이에게 세상이란 곧 부모일 겁니다. 부모가 곧 집이고, 안식처고, 사랑입니다. 정인이에겐 세상이 곧 지옥이었습니다. 아니 지옥임을 알 수도 없었습니다. 다른 온전한 부모와 세상은 알지도 경험하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어리기 때문에 더 끔찍한 일을 겪어야 했고 참혹한 결과를 받아야 했던 정인입니다.


물론 이 일은 양부모만이 잘못한 일이 아님을 압니다. 양모가 정신적 이상이 있음에도 입양 과정에서 검증이 되지 않고 진행된 점, 양부모의 도를 넘은 지속적 학대, 아동보호기관의 안이한 점검,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두 번의 신고에도 구조가 되지 않은 점, 전문의 의사의 신고에도 경찰이 재차 무혐의 결론을 내린 점. 여러 주체의 실수나 악의가 우연히 퍼즐처럼 맞아 들어가 정인이가 죽음에 이른 것임을 압니다.


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제2의, 제3의 정인이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고리들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런 일이 다시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엄정한 처벌로 이 고리들을 끊어주십시오. 세간에 알려진 여러 정황 상, 양부모가 최소한 '미필적 고의'도 없이 실수로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은 저는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부디 여러 증거를 잘 살펴봐주시고, 더욱 엄정한 처벌을 내려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진정서를 씁니다. 이 고리들을 끊고 더 이상 약자에 대한 일방적이 폭행이, 특히 아동학대라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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