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학대 공익광고 제작기 - 시나리오 구상
이제 노인학대 공익광고 시나리오를 짜야한다. 광고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노인복지 전문기관의 아이디어도 받아보고, 다른 캠페인 광고도 참고하며 브레인스토밍을 해보았다. 그런데 뭐랄까. 브레인스토밍 단계의 아이디어들이긴 했지만 대부분이 초등학교에서 자주보던 뻔한 표어나 캠페인을 보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대부분 이런식이다.
1. 밥먹는데 할머니가 맨손으로 김치를 집어서 손자에게 줌.
2. 옆에 있던 아들 부부가 할머니에게 핀잔을 주며 나무람.
3. 할머니의 주눅든 표정과 눈빛.
4. '노인을 공경합시다' 느낌의 문구와 함께 끝.
물론 정서적 학대의 노인 학대 사례를 보여주는 좋은 장면이지만, 뭐랄까 옛날 학교의 교육 영상자료나 90년대 계몽적인 공익광고같다. 그만큼 너무 전형적인 광고만 많다는 말이다. 보는 사람도 너무 익숙해서 광고를 보고도 아무 감흥을 받지 못하고 지나쳐 갈 것 같은 느낌이다.
뻔하지 않은 메세지 전달
누군가에게 메세지를 잘 전달한다는 것.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에서 꽤 본질적인 일이다. 마케팅, 글쓰기, 영상제작 등에서는 당연히 중요한 일이고,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모든 의사소통의 순간순간마다 중요하게 적용되는 일이다.
하지만 광고 시나리오를 만들어보려고 하니, 막상 이 본질적인 일을 다시 고민하게 된다. 광고는 다른 영상과 달리 시간이 짧다. 우리가 제작해야 하는 영상은 30초짜리 영상이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안에 무심코 광고를 마주한 사람들에게 노인 학대에 대한 메세지가 마음에 닿도록 해야한다. 곱씹어 볼 수록 쉬운 일이 아니다. 짧은 시간안에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브레인스토밍하면서 떠오른 아이디어들이 왜 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내 마음부터 분석을 좀 해봤다. 마음에 들지 않은 감정의 이유는 '뻔해서'였다. 뻔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뻔하다는 것의 두 가지 의미
하나는 '이미 어디서 본 듯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주 옛날, 80년대, 90년대부터 있던 계몽 캠페인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레퍼런스로 찾아본 노인학대 영상 중 이 지점에서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 광고는 이 광고다.
이 영상은 '노인은 곧 내일의 나'라는 점을 짧은 시간 안에 명료하게 표현했다. 한 인물이 젊은 나와 나이 든 나 두 가지 역할을 연기하게 하고, 1인 2역으로 동시에 나오도록 영상을 표현한 점이 좋았다. 그래서 미래의 나를 대하는 마음으로 노인을 대하자는 메세지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또 다른 '뻔하다'는 시나리오의 전개와 결과가 예상된다는 뜻이다. 공익광고에서 할머니가 김치를 손으로 찢어 손자에게 주고, 옆에 앉아있는 부모님 표정이 떨떠름할 때부터 이미 뒷이야기는 안봐도 비디오다. 광고란 불특정 사람들이 무심코 보는 영상인데 시작부터 뒤가 예상이 된다면 몰입도가 떨어진다.
아래는 최근 TV송출이 되고 있는 전자담배 공익광고다. 광고의 시나리오 전개가 몰입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광고다.
내가 이 영상에서 주목하는 포인트는 주인공인 여학생의 선택이 궁금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광고에서 친구들의 은밀한 전자담배 권유에 여학생이 갈등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시청자는 여학생의 선택이 궁금해 눈을 떼지 못한다. 영상효과까지 곁들여 광고라는 짧은 시간안에 보는 사람을 다음화 드라마 기다리듯 궁금하게 만든다. 전자담배를 집어들 수도, 거절할 수도 있기에 다음 행동은 예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뻔하지 않은 전개를 만들어낸다.
그럼 나는?
많은 방법과 길이 있겠지만 나는 광고가 처음인 초보이기 때문에 스스로 느낀 것부터라도 잘 적용해보기로 한다. 그래서 우선 두 가지 '뻔한' 요소를 피해보기로 했다. 기존 공익광고에서 많이 다룬 시나리오 전개를 피하고, 다음 전개가 쉽게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과감히 버린다.
그리고 그저 전개가 예상안되는 정도가 아닌 짧은 시간에 몰입이 되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싶다. 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라는 책에서 소설쓰기에 대해 한 조언이 나온다. 장강명 작가는 소설쓰기에서 긴장을 조성하는 방법으로 인물의 욕망과 두려움에 집중해서 써볼 것을 권한다. 광고에서도 짧은 시간 안에 몰입이 되려면 어떤 욕망이나 두려움이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위에서 말한 전자담배 공익광고에서 드러나는 긴장감 역시 마찬가지다. 전자담배에 대한 주인공의 호기심이라는 욕망이 드러나고, 또 학생들이 불법으로 담배를 피며 권유하는 현장 자체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자극하며 짧은 광고에서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생각할 때 이런 점 위주로 고민했다.
- 노인학대에 대한 등장인물의 두려움이 드러나게 한다.
- 여러 주제 중 노인학대에 대한 경각심에 집중해서 메세지를 전달한다.
- 기존에 있었던 상투적인 스토리는 피한다.
- 전개가 손쉽게 예측이 되지 않도록 스토리를 구성한다.
이런 나름의 원칙을 두고 떠올린 시나리오가 아래의 시나리오다.
노인학대 공익광고 시나리오 - 장갑
scene 1. 어버이날, 잡화점 가게에서 부모를 위해 장갑을 사는 아들
(가게 매장 bgm 어버이은혜, 따뜻한 분위기)
아들 : 저희 엄마가 고생을 많이해서요. 장갑 좀 사드리려고요.
scene 2. 집 현관. 외출을 위해 집을 나서는 할머니
아들 : 엄마, 이거 끼고 나가
외출하는 할머니에게 장갑을 건내고 지나감.
뒤돌아 떨리는 손으로 장갑을 받을 때 음향 고조되며 배경음악 오프.
(공포 분위기처럼 영상 분위기를 반전시킴)
거친 손이 아니라 퍼렇게 멍이 든 손 클로즈업.
나레이션 :
다른 이유로 손발이 다 닳도록 힘드신 어른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가족입니다
자막 :
노인 학대 가해자의 70프로는 가족입니다 (통계청 통계자료)
우선 이 시나리오를 통해 노인학대에 대한 노인의 두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것을 극적인 상황으로 연출하기 위해 학대와 반대되는 개념인 효도라는 소재를 사용했다. 효도인 줄 알았던 무언가가 가면을 벗고 학대였음이 드러나는 것. 학대의 70%이상이 가족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가슴 아픈 팩트가 보는 이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 것 같다. 영상으로 잘 표현이 된다면 몰입이 되면서도 노인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게 하는 광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최종 시나리오는 정해지지 않았다. 지금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후보로 두고 광고 제작 관계자들과의 논의하는 단계다. 이 시나리오대로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시나리오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공익광고에 대한 나만의 시각이 형성된 것 같다. 다음 편에서는 확정된 시나리오와 그 촬영 진행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