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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May 23. 2021

유대리는 점심시간에 운동할 시간이 있나 봐?

가끔 친구들과 축구하는 것 말고, 운동을 꾸준히 하기 시작한 건 회사에 다니면서부터다. 20대 초중반에는 가져본 적 없는 뱃살이란 것을 회사에 다니면서 경험하게 됐다. 회사 과장님들이 다들 한결 같이 배가 나와있는 것을 보고 '나는 절대 안 그래야지' 생각했는데 나에게 그 조짐이 보이다니! 하루 종일 앉아있는 시간이 계속되면서 활동량은 줄고, 저녁 술자리는 늘어나니 배가 나오는 건 사실 당연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사내 피트니스를 꼬박꼬박 다녔다. 최소 주 3회는 가려고 노력했다. 성실하게 헬스장에 출석하지 않으면 다음 분기 헬스 이용이 끊기기 때문에 헬스장에 출근도장을 찍은 것도 있지만, 정말 몸이 무거워지고 둔해지는 느낌이 싫어서 하루 단 30분이라도 운동을 했다.


점심때 운동을 하면 하루 종일 다른 사람 신경 써야 하는 회사 생활에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건강을 위한 자기 관리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점심 운동하기가 쉽지 않다. 장애물이 하나둘이 아니다. 회사 동기들이나 지인과 점심 약속도 심심치 않게 있고, 일 때문에 점심시간을 예기치 않게 뺏길 때도 있다. 또 점심시간에 운동을 하면 시간이 꽤 지나기 때문에 밥을 간단히 먹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식욕과 치열한 내적 싸움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장애물들은 상사의 눈치에 비하면 약과다.




"유대리는 점심시간에 운동할 시간이 있나 봐?"

대리 1    부장님에게 들은 말이다. 아니, 때가 어느 때인데 점심시간에 운동하는 것을 꼬집어 말하지? 요즘 직장인들 점심시간 이용해서 운동도 하고 자기 계발도 하는  유행이라는 뉴스도  보셨나? 더구나 우리 회사는 자율 출퇴근제로 바뀐 이후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 사용이 개인마다 자유롭다. 그럼에도 아직 옛날 생각이 바뀌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이런 소리를  번씩 들어야 한다. 이런 말에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난감하다. 일부러 비꼬는 말이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은 각자의 개인 시간인 것을 모를  없는 부장님인데 굳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에둘러 말하는  매우 감정 섞인 언사다.


감정을 담은 말엔 나 역시 감정이 반응한다. '아니, 업무 시간도 아니고 개인 시간 쪼개서 운동하는 게 마음에 안 드세요?'라는 생각이 툭 올라오는 것을 누르며 대답한다.

"네, 그럼요! 점심은 간단히 해결하고 운동 시간으로 쓰고 있어요!"


아예 무례하게 말하면 그 무례함에 대해 대답할 텐데, 이렇게 애매한 말이 대처하기 어렵다. 감정대로 반응했다가는 '그냥 물어본 거 가지고 유별나네, 뭘 그리 과민반응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이럴 땐 나도 눈치의 민감도를 낮춘다. 라디오 볼륨을 낮추듯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쭉 다이얼을 돌려버린다. 그럼 나의 눈치가 말속에서 캐치한 그 감정을 일부러 무시한다. 그리고 말한 내용에 대해서만 대답을 하는 거다. 그럼 상대의 비꼼이 무력화된다. 좋은 전략이다.


"대단해, 유대리"

칭찬인지 비꼼인지 모르는 말을 남기고 지나가신다. 이번 대답까지 들으니 정말 친근한 스몰톡을 한 건지, 비꼰 건지 구분이 안 간다. 나의 눈치 밥 말아먹은 당당한 대답에도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어조로 '대단해'라고 이어 말한다. 뭔가 상황을 빠져나가는 게 능구렁이 같다. 역시 대기업에서 부장 자리까지 그냥 올라간 게 아니야...




한창 '꼰대'가 사회적 이슈이자 사내 게시판의 뜨거운 감자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부장님은 다행히 나에게 그런 꼰대 발언을 더 이상 하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눈치 민감도를 낮춘 채 점심 운동을 계속했다. 그래도 운동을 꾸준히 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직장인이라서 더 힘들다. 직장인들이 선택 가능한 시간은 출근 전, 점심, 퇴근 후인데, 셋 다 만만치 않다. 아침 시간은 나의 아침잠 때문에 지속가능성이 없어 보였고, 저녁 시간은 약속이나 여가를 즐겨야 하는 소중한 시간이라 주 3회씩 빼긴 아까웠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운동을 넣었다. 아침, 저녁 시간보다는 어떤 이벤트가 발생할 확률이 낮은,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시간이기 때문에 오히려 운동 결심을 지키기 더 쉽다. 상사에 대한 눈치 민감도만 좀 낮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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