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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May 27. 2021

최선을 다하면 큰일 나는 이유

'최선'을 생각하다

나는 김영하 작가님의 팬이다. 알쓸신잡에서 작가님을 알게 된 후, 사람 자체에 반해버렸다. 박학다식하고 통찰력 있는 작가님은 겸손함을 잃지 않고 말도 재치 있게 하신다. 뭐랄까,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완벽한 균형감을 이루고 있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건 나의 해석일 뿐, 김영하라는 사람에게서 그런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내가 작가님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 지점이다. '무리함'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


최선을 다하면 큰일 납니다 - tvN 알쓸신잡3 중


"저는 집에 있을 때, 함부로 앉아있지 않아요. 대체로 누워있습니다."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절대 최선을 다해선 안 된다는 게 삶의 모토라고 한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작가님의 말에 물개 박수로 맞장구를 치며 '역시! 나도 최선을 다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습관처럼 스크롤을 내려 댓글을 읽었다.


뼈 때리는 댓글. 아니, 댓글을 이렇게 쓰면 어떡해... 너무 아프잖아...


베댓을 읽고 제대로 현실 자각 타임이 찾아왔다. 나도 10초 전 생각한 결심을 번복해야 할지 말지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아마 김영하 작가님이나 유시민 작가님은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되지만, 나는 반드시, 기필코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거 아닐까?' 후.. 힘든 고민의 시간이었지만 신념이 흔들릴 뻔한 순간을 잘 참아냈다. 다행히 나는 계속 최선을 멀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야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하라는 말, 너무 평범하고 흔한 말이지만 이렇게 가혹한 말이 없다. 최선의 끝이 어디란 말인가. 고3인 동생이 받아온 학원 전단지에는 늠름한 포즈를 한 강사 사진 아래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죽어라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 무심코 본 전단지에서 무섭다는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사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학생 때는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항상 의심했던 것 같다. 결론은 항상 같았다. '더 할 수는 있긴 해...'


고등학생 때 밤 12시에 자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공부하다 밤 1시, 2시에 자곤 했다. 점심시간 종이 치면 친한 친구와 식당으로 바로 달려갔다. 그래야 줄을 서지 않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밥을 15분 정도만에 후다닥 먹었다. 그렇게 점심시간에도 40분 정도의 시간을 남겨 친구와 다시 공부를 했다. 이렇게 나는 내 모든 시간을 활용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은 끊어지기 쉬운 법이다. 결국 고3 때 모의고사를 보는 도중 급성 위경련으로 담임선생님 차에 타 응급실에 실려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떤 사람도 100%의 힘으로 계속 살아갈 수는 없다. 세계 최고의 선발 투수들도 절대 100%의 힘으로 공을 던지지 않는다고 한다. 등판해서 70, 80%의 힘으로 공을 던지다가 계속되는 안타로 실점할 위기해 처했을 때, 바로 그때 100%로 힘을 끌어올려 던진다. 타자들은 중요한 순간에 강력해진 투수의 공에 이내 헛스윙을 하고, 세계 최고의 선발 투수들은 그렇게 위기를 벗어난다. 혹시 모를 중요한 순간이나 위기의 순간을 위해 적절한 에너지만을 사용하는 것이다. 평소에 최선을 다하면 큰일이 날 수 있다.




최선을 다할수록 놓치게 되는 것들


학생 때 그렇게 경주마처럼 살아오다가 대학에 오고, 사회에 나오며 눈가리개를 끼지 않은 사람들을 보게 됐다. 대부분 열심히 달리는데 저 사람들은 왜 달리지 않지? 의아했다. 하지만 동시에 부러웠다. 꽃도 보고, 하늘도 보고, 구름도 보며 '예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김영하 작가님은 < 나는 부산에 사는 것일까>라는 글에서 부산말로 이루어진 멜로물, '응답하라' 시리즈가 전국적으로 흥행한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놀림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던 변방의 언어가 서울공화국의 중심으로 진격해 들어온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표준어 멜로의 종말인가, 억압된 것들의 귀환일까. 건달의 영혼과 빌딩 임대업자의 육체를 가진 소설가가 대낮의 부산 거리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는 주제다.'


나는 주제와 상관없이 엉뚱하게도 그 아래 이렇게 메모했다.

'대낮에 거리를 거닐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며 사시는구나. 멋지다.'


내가 부산 거리를 거닐었으면 '그 부산 사투리 영화 재밌다' 혹은 '해운대 저 빌딩 집값 엄청나겠다' 정도 얘기하며 지나갔을 텐데... 김영하 작가님의 자유로운 생각의 폭이 삶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듯했다. 내가 보기엔 부와 명예가 넘치는 사람보다 김영하 작가님이 더 풍요로워 보인다. 비결은 뭘까. 집에서 함부로 앉지 않고 누워있는 게 그 비결일까.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생긴 틈과 에너지는 주위를 둘러보게 한다. 우리의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 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여집합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글 내용과 상관없는 팬심 가득한 메모



무엇보다 최선을 찾는 일은 힘들고 어렵다


우리가 말하는 최선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태도로서의 최선과 선택으로서의 최선이다. '최선을 다하다'라고 할 때는 온 힘을 기울이는 태도를 의미하고, '그게 최선의 방법이야?'라고 할 때는 가장 좋고 훌륭한 선택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금까진 '태도로서의 최선을 다하지 말자'고 얘기한 건데, 이제 '선택으로서의 최선도 찾으려 노력하지 말자'고 얘기하려 한다.


나는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산업공학과에서는 최적화(Optimization)이라는 것을 배운다. 주어진 제한 사항에서 수리적으로 최적해를 구하는 문제다. 예를 들면, 샐러드 가게 아저씨가 샐러드 재료를 사는데 각각 얼마의 비용이 들고 샐러드 메뉴들도 남는 이익이 다 다르다고 해보자. 이때, 각 재료를 얼마큼 사고 각 샐러드 메뉴는 얼마큼 팔아야 최대 차익을 남길지 답을 구하는 것이다. 답을 구하면 퍼즐을 맞춘 듯 속이 다 시원하지만 조건과 상황이 복잡해질수록 최적해 구하기는 굉장히 어려워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과목이다.


또 다른 전공과목인 인간공학이란 과목이 있다. 여기서는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개념을 배운다. 굉장히 멋있어 보이는 이름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주먹구구 방법론'이다. 정확한 수리적,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경험적으로 최적해에 근사할 것으로 생각되는 전략을 선택한다. 조금 어처구니없어 보이지만 제한된 시간과 자산 내에서 사용하는 리소스에 비해 꽤 괜찮은 성과를 보이기에 실용적으로 평가받는 방법론이다. 과제할 때도 굉장히 편한데, 조금 어려운 부분은 뇌피셜로 방법을 만들어 쓰고 '휴리스틱'을 적용했다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과제 점수는 상상에 맡깁니다)


최선을 찾는 일은 최적화(Optimization) 문제를 푸는 일이다. 설명했듯이 굉장히 어렵다. 우리의 복잡한 인생사라는 문제에서 최선의 길을 찾으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게다가 최적화 문제와 달리, 꽤 많은 노력을 기울여 그럴듯한 최선의 방법을 알아내도 그게 최선이란 보장도 없다. 대학 때 꽤 많은 과제를 휴리스틱으로 해결했는데 인생도 그렇게 사는 게 괜찮지 않을까 한다.



중요한 건, 최선과 차선이 뭐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것


꽤 예전에 TV 특강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에서 하지현 교수가 최선과 최악 사이를 이렇게 구분 지어 강연하는 것을 봤다.


깔~끔하게 정리한 인생 선택의 보기


하지현 교수님은 삶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1) 최악은 피할 것

2) 차선과 차악 중에 마음 가는 쪽으로 선택할 것

을 권했다.


나는 교수님이 차선만 고르라고 해도 마음이 편했을 거였다. 그런데 차악이어도 상관없으니 마음이 가는 곳으로 가라는 교수님의 말에 온천수 같은 따뜻함을 느꼈다.


나는 저 선택의 네 가지 보기에 '나의 마음이라는 기준'도 포함해서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나는 삶에서 차선을 선택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최선은 단 하나이지만 차선은 매우 많다. 그래서 최선을 찾는 수고는 차선을 찾는 수고보다 훨씬 크다. 하지만 효과는? 최선과 차선의 차이가 정말 그렇게 클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소위 가성비가 좋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앞서 말했듯이 최적의 방법이 아닌 휴리스틱 방법도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다.




최선을 다하자는 말, 얼마나 멋지고 매혹적인 말인가. 앞으로도 세상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고, 최선을 찾아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과거에서부터 먼 미래까지 인류의 관용구로 널리 쓰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차선의 노력을 하고, 차선을 선택하며 살려고 한다. 차선이라는 멋없는 말로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팽팽히 당겨진 고무줄이 아닌, 때가 되면 더 당겨질 수 있는 고무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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