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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Jun 28. 2021

가끔은 이런 대화 나누고 싶을 때가 있어

가벼운 친구와 떠나는 깊은 철학 여행,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삶에서 잔잔하지만 헤어 나올 수 없는 만족감에 빠져지내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팟캐스트에서는 지대넓얕이 방송되고, TV에서는 알쓸신잡이 방영되던 2017년이다. 책도 별로 안 읽고, 세상 돌아가는 일보다 회사에서 내 앞가림하느라 바쁜, 그런 시기였는데 '알아두면 쓸데없는 넓고 얕은 대화'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당시 나는 긴 시간 이동하는 시외버스만 타면 설레곤 했다. 한 시간 짜리 알쓸신잡을 다시 보기 하거나, 두 시간이나 되는 지대넓얕 팟캐스트를 들을 생각에.


지금 생각해보니 보통 친구들과 하는 시시콜콜한 대화 말고, 새롭고 흥미로운 대화를 갈구하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매일 술자리에서 하는 똑같은 얘기 말고, 안 들어본 얘기, 안 해본 생각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쓰지 않던 뇌 부분을 간지럽히는 대화 말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넓고 얕게 이곳저곳을 머릿속에서 여행하며 즐거움과 자유를 느꼈다.


이야기 나누고 싶어 미치겠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읽는 나의 마음이 딱 이때와 같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의 마음이 지대넓얕과 알쓸신잡이 종영하던 그때 같다. 마음 같아선 사람을 모아 이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하고 싶다. 한 번 말고, 한 챕터의 한 철학자씩 총 14번의 책모임을 열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 연초부터 김영하북클럽을 재미있게 참여하고 있는데, 이번 책은 특히 즐거웠다. 이렇게 끝내기 아쉽다. 이 책을 다른 방식으로 더 경험하고 싶다. 그래도 곧 김영하 작가님과 함께 책에 대해 나누는 라이브 방송이 있다. 짧은 시간이겠지만 책을 좀 더 풍성히 살펴볼 생각에 기대가 된다.


이 책을 6월 한 달 동안 읽었다. 잠을 자기 전 침대에 누워 노란 불빛의 수면등을 켜고 이 책을 폈다. 그렇게 매일 잠들기 전, 에릭 와이너와 함께 한 철학자씩 찾아서 여행을 떠났다. 비유가 아니라 저자는 각 챕터에서 그 철학자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정말 기차여행을 떠난다. 'OO 철학자처럼 OO을 하는 법'을 찾아 나서는 14번의 여행이다. 오늘의 여행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궁금하다. 일부러 평소보다 30분 일찍 잠자리로 향한다. 코로나 시대라 여행이 간절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밤마다 여행을 떠날 생각에 들떠 무릎에 베개를 놓고 그 위에 책을 편다.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책의 두 번째 여행에 나오는 소크라테스를 다시 만나보려한다. 저자는 대화를 통해 스스로 깨우치게 했던 소크라테스를 만나기 위해 아테네로 떠난다. 여행하는 내내 '궁금해하는 것'과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한다.

"질문을 살아요?"

"네, 질문을 사는 겁니다. 오랜 시간 마음 한구석에 질문을 품는 거예요. 질문을 살아내는 거죠.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해결책을 찾아버려요."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p69


현대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좋아한다. 위기 상황에서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투수를 좋아하고, 기업에서는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를 원한다. 교육에서는 시험을 통해 빠른 문제 해결 능력을 요구한다. 우리 문화에서는 질문 자체로 존중받는 공간이 없다. 성급히 답을 내려고 하지 말고 질문 자체에 오래 머무를 필요가 있다.



'궁금하다'는 '다크 초콜릿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궁금해'와 같은 단순 정보를 향한 말이기도 하지만, '경이로운 것, 기적, 놀라움의 대상'이라는 어원에서 온 말이기도 하다. 이런 '궁금하다'는 답을 잊고 그 순간에 머물게 만든다.

다른 한편 궁금해하는 것은 짧은 순간만이라도 물음을 유예하고 그저 지켜보는 것이다.
도대체 바다소금과 아몬드가 박힌 질 좋은 벨기에 초콜릿의 어떤 점이 내 뇌를 춤추게 하고 내 심장을 노래하게 하는지 궁금해.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p55


저자는 문득 성공에 대한 친구의 질문을 떠올린다. 친구는 '왜 성공하고 싶어?', '얼마나 성공하면 충분한데?' 등으로 묻지 않고 '너의 성공은 어떤 모습이야?'라고 물었다. 친구의 질문에는 개인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전기가오리에 뇌를 쏘인 것처럼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었던 것을 떠올린다. 좋은 질문은 그렇다. 기차처럼 달리던 우리를 갑자기 무중력 상태에 놓인 것 마냥 순간에 머물게 만든다.



* 아래 브런치는 내가 이 질문에 한참이나 머물렀던 순간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분에게 추천합니다

예전 tvN에서 방영한 알쓸신잡을 좋아하시던 분.

팟캐스트 지대넓얕을 즐겨 들으시던 분.

여행지 가면 꼭 설명책자 들고 다니시는 분.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맨날 똑같은 얘기만 한다 싶으신 분.

'철학이란 게 뭔데' 싶으신 분.

철학이 내 삶에 어떻게 스며들 수 있는지 느끼고 싶으신 분.



이래서 추천합니다

철학자들 때문에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그냥 카페에서 다양한 디저트를 먹듯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기억력이 미천하여 이 맛이었는지 저 맛이었는지 헷갈린다. 분명히 그 색깔과 다름이 다채로웠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여행을 떠나며 디저트의 이름과 맛과 향을 기억하고 싶다. 언제든 내 삶에서 떠올릴 수 있게. 행복한 순간, 길을 잃은 순간, 지루한 순간, 중요한 순간 등 내 모든 개인적인 순간에. 몽테뉴의 말처럼 개인적이지 않은 통찰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까.


그리고 저자 때문에 샅샅이 배우고 싶은 책이다. 저자의 통찰력을 하나하나 꼭꼭 씹어 소화하고 싶은 책이다. 교과서에 있는 철학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말한다. 철학자의 원문보다 저자의 통찰 어린 문장에 줄 친 게 더 많을 정도다. 적절하고 인상 깊은 인용과 재치 있는 표현, 통찰이 담긴 문장의 향연이다. 줄을 수없이 치고, 플래그를 수없이 붙였다.


동시에 글이 현장감 있다. 대개는 진지하지 않은 옆집 아저씨 같은 가벼움과 속좁음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집중력 있게 빠져서 읽다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유머로 갑자기 웃음 짓게 하는 책이다. 관념적일 수 있는 철학을 여행에 녹여 구체적이고 체험적으로 보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느끼게 해 준다. 저 멀리 있는 철학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있는 철학을 경험할 수 있다.



가끔 비유가 억지스럽다 느껴질 수도..

아쉬운 점도 있다. 독자에 따라 '비유가 작위적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에필로그에서 책에서 언급한 모든 철학적 관점을 적용해서 마무리하는 부분은 깨달음을 총망라한 에필로그를 쓰기 위해 너무 갖다 붙인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워낙 비유와 통찰이 좋고,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저자의 진심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에 에필로그에서 핸드폰 액정 깨지는 작은 일에 열심히 철학적 사유를 적용해보려는 저자의 모습이 귀여웠다.(나보다 훨씬 어른이시겠지만ㅎㅎ)


결론은, 철학 주제부터 기차여행이라는 글 구조, 진지함을 풀어내는 위트, 기발한 문장 표현, 글 흐름에 빠져들게 하는 문체, 그리고 무엇보다 펜으로 그린 종이질감의 표지까지 완벽하게 내 취향을 저격한 책이다. 한 철학자씩, 천천히, 여행하듯 읽어보길 추천한다.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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