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습니다

by Gyu

체육관을 나서려는데 관장님이 나를 불렀다.

"저번에 고민했던 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때? 후회해?"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4교시에 보결 수업을 배당받았다. 코로나로 결근하셨거니 했다. 늘 하던 것처럼 영화를 보여줬다. 영화를 보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학부모였다. 그게 누구든 간에 예고없이 걸려온 업무 전화라면 불길했다.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다급한 목소리로 본인 아들과의 상담을 부탁했다. 나는 무슨 일인지 자세히 물었다. 학생이 전담 수업에 안 들어가고 반에서 울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보결 중이니 점심 먹기 전에 얘기를 해보겠다고, 걱정 마시라고 안심시키며 전화를 끊었다. 때마침 점심 보결 담당 선생님이 와 반으로 급히 올라갔다. 그 학생은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학년 연구실로 데려 가 얘기를 들었다. 요는 친구가 자기를 무시하는 거 같아 기분이 나쁘다는 말이었다. 우선 밥을 먹고 모두의 얘기를 들어봐야 할 거 같았다. 교실에서 4명의 학생을 호명했다. 밥 먹고 상담 좀 하자는 말에 왜냐고 되물었다. 그 표정이 천연덕스러웠다. 시답지 않은 일인 거 같아 다행이기도 했지만 허겁지겁 올라온 게 허탈했다.


식사 후 4명의 학생을 차례대로 불러 얘기를 나눴다. 듣고 보니 수업에 빠진 학생이 일방적으로 욕설을 내뱉었다고 했다. 사건이 예상했던 바와 다른 전개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서로 입을 맞출 정도로 영악한 아이들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동그랗게 뜬 눈과 자신에 찬 어조만 들어도 진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잘못은 수업 빠진 학생이 했는데 어째서 그 학생은 혼자 물에 젖은 강아지처럼 앉아 있었을까. 수업에 빠진 학생을 다시 불러 왜 욕을 했는지 따지듯 물었다. 잘잘못을 따져 혼내려고 불렀는데 사정이 딱했다. 과거에 받은 상처가 커 보였고 무작정 꾸짖는 건 정답이 아닌 거 같았다.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일의 결과를 보자면 한 학생이 상처를 받았다. 4명의 학생은 그저 옆에서 떠들었고 친구의 과거를 몰랐을 뿐이나 상처를 건드린 건 사실이다. 일이 일어난 과정에서 욕설을 한 학생이 가장 잘못한 걸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인의 생채기를 묵과할 수도 없다. 또 그게 깊어 보여 함부로 싸매어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결국 4명의 학생을 다시 불러 잔소리를 했다.

"다른 사람이 힘들어하는 게 있고,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을 때, 우리가 크게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그 사람을 배려해 주는 게 맞는 거야."

방과 후에는 남은 학생을 불러 얘기했다.

"이전에 상처를 줬던 친구들을 용서해야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 같아."


충분히 고민했고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확신했다. 4명 모두에게 교사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두가 떠나고 나니 묘하게 불편했다. 4명의 학생에게 충분히 공감해주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잔소리를 하기 전에 욕을 들어서 속상했겠구나 하고 한마디만 더 할 걸 싶었다. 욕도 듣고 꾸중도 들었으니 억울울했을 터였다. 최대한 공정하게 처리한다고 했는데 4명의 입장에서 봤을 때 분통 터질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퇴근하는 동료 교사를 붙잡고 사정을 늘어놨더니 내가 잘못한 건 없다며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 말을 들으니 또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가볍게 넘기자고 생각하며 체육관에 갔다. 그런데 마음 한 편으로는 내가 옳았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에게 검사받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내 편이 필요했다. 의도한 바는 그랬으나 말을 하면 할수록 후회와 미안함이 몰려왔다. 한 명에게만 지나치게 감정 이입했던 게 화근이었다.


그 일이 있고 토요일에 눈을 뜨니 아무래도 4명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는 게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뱉은 말 또한 비슷한 맥락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거였다. 잘 가르치려면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진심을 가득 담아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판사가 아니니 공정하게 심판하지 못했던 점이 미안하지는 않았다. 공정하지 못해 억울해했을, 상처받았을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메시지 전송 직전까지 행여 날 만만하게 보지는 않을까 우려했지만 그거야 말로 못난 어른의 표본이 아닐까 싶어 용기를 냈다. 속이 후련했다. 만나서 사과를 했다면 아마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선생님이 왜 죄송해요?'하고 되물었을 것이다. 그 상냥한 얼굴들을 상상하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마찬가지로 메시지를 받고 환한 웃음을 보여줬을 아이들 덕분에 주말이 한결 가분해졌다.


마음이 맑으니 생각도 맑아졌다. 역시, 그때 나의 행동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유사하게 대처했을 것이다. 다만 욕을 들은 학생들의 마음도 충분히 공감해주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지금도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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