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작당 모의라도 한 걸까.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사건은 항상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연구실에서 차 한 잔 타 오는 길에 전화벨소리가 들렸다. 단짝에게 사과를 못 받은 게 억울해서 어젯밤 태훈이가 엉엉 울었다고 했다. 분명 어제 6교시까지 잘 놀았던 걸 봤는데 언제 싸웠을까. 눈치 채지 못했던 게 사뭇 죄송스러워 관찰했던 것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우선 학교에 보내주시면 얘기를 나눠보겠다고 일단락지은 뒤 전화를 끊었다.
유난이다 유난이야. 그 둘은 절대 싸울 사이가 아니라 여겼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날 두 학생이 등교하자마자 상담을 진행했다. 현도는 쌓인 게 많았지만 하지 말라는 말을 못 했다. 태훈이는 현도의 마음을 잘 몰랐던 게 원인이었다. 여전히 마음이 상해 있는 상태라 화해는 자율에 맡겼다. 마칠 때 보니 둘은 잘 화해한 거 같았다.
3교시 체육 시간에는 여학생 몇 명이 보이지 않아 한참 찾았다. 영어 교실 앞에서 싸우고 있었던 거 같다고, 싸우는 두 학생을 말리느라 나머지도 늦는 거 같다고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여유롭게 반으로 걸어오는 여학생 무리를 목격했다. 운동화를 챙겨서 운동장으로 내려오라는 말만 전하고 나머지 아이들과 먼저 내려갔다.
선생님이 뭐라고 했어. 운동장이라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늦을 거 같으면, 보건실에 가더라도 선생님한테 전달해야 한다고 했지. 운동장에 세워둔 채 잔소리 시간을 몇 분 가졌는데 정작 본인들은 발로 모래 장난을 치며 딴청을 피웠다. 태도에 대해 한 소리 더 할까 하다가, 더 오래 말했다간 체육 시간을 망칠 것 같아 거기까지만 했다.
체육을 마치고 올라오니 이번엔 나경이가 잔뜩 울상을 지으며 교탁으로 왔다. 자기는 관찰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남학생 한 명이 아무 일도 안 한다고 딴지를 걸었다며 속상해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걸 느꼈다. 나경이에게는 우선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4교시에 국어책을 폈는데 5단원이 마침 속담 단원이었다. 계획에 없던 속담 초성 퀴즈를 냈다. 속도 모르고 즐거워 방방 뛰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코웃음만 나왔다.
'ㄸ ㅁㅇ ㄱㄱ ㄱ ㅁㅇ ㄱ ㄴㅁㄹㄷ'
기가 막히게 똥을 알아보는 남학생. 그 힌트를 듣고 여학생 한 명이 정답을 외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전에도 말했지만, 각자 자기 할 일이나 잘하자. 너희들이 선생님 눈치 보느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며 친구 기분 상하게 하지 마라. 선생님은 아무 말 안 하는데 너희들이 왜 그러냐. 우리 모두 똥 묻은 개다. 선생님도 실수하고 사람 다 실수한다. 여기서 완벽한 사람 있냐. 말도 좀 가려해라. 마찬가지로 똑같은 말이지만, 꼭 해야 하는 말인지, 상대가 기분 나빠할지 생각하고 말해라. 이 두 가지만 잘 지켜도 싸울 일 없다.
속은 시원해도 편하기만 한 건 아니다. 말하는 나도 최대한 아끼고 아껴 한 말이지만 내뱉는 순간 사족이 된다. 한 문장을 뱉기 전에 사전 검열을 마치고, 교육에 적절한지, 꼭 필요한 말인지 헤아리다 보면 잔소리도 잔소리 나름대로 고단하다.
현도와 태훈이 점심 상담을 끝낸 뒤 연구실 책상에 잠시 엎드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한 오 분 정도 그러고 있다가 반으로 돌아가려는데 반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난다.
야 선생님 온다 빨리!
온다는 반말이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았다. 깜짝 파티라는 게 이렇게 소란스러워도 되나 싶어 옆 반 선생님에게 미안했다. 뭔 날인가 곰곰이 생각하며 가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날은 없다.
-외부인 출입금지-
미안하지만 난 외부인은 아닌데. 귀여운 쪽지에 슬쩍 연구실로 돌아가 줬다. 앉아 있으니 반장이 쪼르르 와서는 이제 다 됐단다.
교실에 가보니 아이들이 책상을 하트로 배치해 두었다. 그 안에서 플래시를 켠 채로 스승의 은혜 노래를 틀었다. 6학년만 3년 했지만 이런 건 또 처음이었다. 앞선 2년은 코로나 시절이라 아이들과 돈독해질 시간 자체가 없었다. 오전 내내 잔소리를 듣고도 뒤돌아서면 그만인 아이들. 나는 눈치 없이 오늘이 스승의 날이 낀 평일인 것도 몰랐다. 어쩐지, 여학생 한 명이 그제 초콜릿 한 봉지를 주려고 했었다. 물론 거절했고. 웬 초콜릿이지 했더니 스승의 날 선물이었나 보다.
한창 감동의 도가니에 흠뻑 빠져 동영상을 찍고 있는데 반장이 말했다.
피구 해요.
수가 뻔히 보였기에 미워할 수 없었다. 올해는 유독 공부를 싫어해서 보상으로 체육을 많이 시켜줬다. 그래도 매일 놀잔다. 승부욕이 지나쳐 게임에서 지기라도 하면 노발대발하면서 게임이 그렇게 좋나 보다. 그래도 기대를 가지고 등교하는 거 같아서 뿌듯하다. 편지 내용도 대게 '게임 많이 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였다.
애들이 나랑 안 맞는다, 안 맞아. 연구실에서 옆 반 선생님에게 넋두리를 놓았더랬다. '피구'라는 글자를 보며 잠깐이나마 그렇게 생각했던 게 미안했다. 나야말로 뭐가 묻어도 제대로 묻은 사람인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꼴이라 부끄럽다. 피구나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