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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May 18. 2022

고래가 있는 교실

 현도의 첫인상은 여러 의미에서 강렬했다. 3월은 학생들이 온라인 등교 중이었는데 태블릿이 없는 현도는 온라인 수업 참여 자체에 애를 먹고 있었다. 개학 1주 전에 태블릿을 빌려갈 수 있었지만 학부모님 두 분 다 직장 일로 바빠 보이셨다. 개학 당일, ZOOM에 접속하지 않는 현도가 걱정돼 학부모님에게 연락했더니 그 사정을 알려주셨다. 현도를 학교로 보내 주시면 태블릿을 대여해 주겠다고 하니, 한 술 더 떠 교실에서 수업을 들으면 안 되겠냐고 하셨다. 너무 당당한 요구에 조금 언짢았지만 친절한 음색을 유지하며 편하게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몇 분 뒤, 현도가 교실 뒷문을 살며시 열고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ZOOM 수업 중이라 가벼운 눈짓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교무실에 가면 패드 대여할 수 있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할 시간을 주는 동안 현도에게 말했다. 현도는 뒷문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는데 내 말을 듣고 살짝 갸우뚱했다. 교무실이 어디인지 모르는 눈치다. 6학년이 교무실을 모를 수도 있구나. 손가락으로 2를 만들어 2층으로 가라고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현도는 그제야 교실을 나서 2층으로 내려갔다.


 온라인 수업은 정신없이 흘러간다. 학생들이 채팅을 선호하는 탓을 무시할 수 없다. 한 자 한 자 읽으려고 보면 이미 바닥에서 꼭대기로 올라간 채팅창, 그 와중에 '선생님 소리가 잘 안 들려요,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요, 어디하고 있어요' 등 흐름을 끊는 질문들. 설상가상으로 그날은 현도마저 날 도와주지 않았다. 한참 전에 교무실에 내려 간 학생이 20분이 넘도록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급히 교무실로 전화를 했다. 학생은 이미 갔다는 차게 식은 대답이 어찌나 식은땀을 흐르게 하는지. '미쳤다' 하고 속삭였다. 현도는 휴대폰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학부모님께 바로 연락을 드렸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아, 현도 태블릿 받아서 집으로 가라고 했어요' 하는 말씀에 화기가 생겼지만 침착하게 대처했다.


 그 후에도 현도는 온라인 수업 진행 방법을 아예 몰라 여러 번 학교에 와야 했다. 몇 번 알려줘도 스스로 못해 온라인 수업 참여 방법, 과제 제출 방법 등을 자세히 설명하는 동영상을 현도 태블릿에 남겨야 했다. 학부모님께 협조를 구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현도는 학습 결손도 심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도는 수업에 전혀 집중하지 못한다. 가정통신문을 수십 번 복사해 줘도 다음날 회신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 마디로 6학년 치고는 손이 많이 가는 학생이다.


 얼마 전에는 해양 환경 생태와 관련하여 고래가 자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영상을 보고 클레이 비누를 만들었다. 참고 그림은 아기자기한 귀여운 고래가 푸른 바다를 헤엄치는 평면적인 모습이었다. 작은 요철이 있었지만 만들기 크게 어렵지 않은 모양새다. 그런데 웬걸, 현도의 고래가 범상치 않았다. 평소 수업 시간에는 해야 하는 걸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해서 종종 핀잔을 듣곤 한다. 그날도 현도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고래를 만들었다. 날렵하게 생긴 진짜 고래를.

현도가 만든 고래

 "얘들아, 현도가 만든 거 봐. 진짜 대단한데?"

 칭찬을 들은 현도는 신이 나서 고래가 쉬는 바위도 만들겠다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현도는 조소에 재능이 있어 보였다. 쉬지 않고 가위질을 하며 종이를 자르고 풀로 장난을 치기 때문일까. 불현듯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나는 얘들보다 좀 더 배웠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장점을 놓치고 있었을까. 많이 배운 게 결코 더 지혜롭다는 걸 뜻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활동만 하면서 그 활동에 소질이 없는 학생들을 답답해하고 남몰래 포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포기당한 학생들이 유독 많았다. 변명을 하자면 수업 시작과 동시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몇 있다. 초등학생이 엎드려 자는 건 정말 처음 보는 일인데 그 소수의 학생을 제외해도 동기 유발 게임에만 목숨 걸고 수업은 참여하지 않는 학생도 좀 보인다. 즉, 올해 애들이 유독 공부를 싫어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수업 참여도가 높았다. 학습 부진 학생도 준비한 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좋아해 줬다. 내 탓이 아니라고만 믿고 싶다. 교과 연구 부족의 결과가 아닐 수 없는데 자꾸 책임을 회피하고 싶다.


 한 사람을 온전히 봐주지 못하고 내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교사로서 최악의 자질이 아닐까.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면 그것만 보이기 시작할 텐데 내가 무능한 탓이다. 현도를 포함해 미리 포기했던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문제일 수도 있다.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했는데 왜 수업에 집중을 못 하는지, 어떤 결손이 있는지 탐구해 보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찍부터 성취감이란 걸 학교에서 맛보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인 거 같다. 간단한 내용이지만 외계어처럼 들렸을 걸 생각하면 대학 강의를 듣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졸 수밖에 없다.


 내가 그들을 바라볼 때 은연중 묻어나는 한숨도 도움이 안 된다. 같은 말을 세 번 네 번 반복하다 보면 짜증과 한숨이 뒤섞여 뾰족뾰족한 게 입에서 툭 튀어나오는데, 그런 피드백을 주로 받는 아이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현도의 고래도 춤을 추며 활기차게 헤엄치는 날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지훈이, 교은이, 우현이, 재용이, 재원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장점이 더 많은 아이들이다. 6학년 답지 않게 순수하다. 간헐적으로 욕도 하지만 악의는 없다. 친구들을 좋아하고 어른에게 공손하다. 밝다. 다만 집중력이 좀 떨어져 수업 시간에 갑갑할 뿐. 이제는 천 번 만 번이라도 친절하게 얘기해 주는 선생님이고 싶다.  


 '얘들아, 부족한 선생님을 믿어줘서 고마워. 보낸 날보다 남은 날이 더 많으니 선생님이 더 잘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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