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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Aug 16. 2022

방학이지만 좀 살려 주세요

 비슷한 시기에 주짓수를 시작해 오래 함께 한 동생이 있다. 그 동생의 손위 형제가 초등교사라 공통 화제가 있었고 덕분에 가까워지는 게 어렵지 않았다. '철밥통', '아나공', '성과급 지급 시기' 등 모르는 게 없어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날도 어김없이,

 "교사 개꿀."


 올해는 1급 정교사 자격 연수를 들었다. 15일짜리 연수라 3주 상회하는 기간을 할애해야 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는 바람에 집합 연수에서 화상 연수로 전환됐다. 8월 휴가는 어디 가지도 못하고 발이 꽁꽁 묶인 상태라 영락없이 출근행이었다. 집에서 들어도 되지만 이왕 5시까지 연수를 들어야 한다면 학교에서 2학기 준비도 병행하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출근길이 길지 않아 가능한 결심이었다.


 처음부터 화상 연수였던 건 아니다. 간헐적으로 집합 연수가 섞여 있었다. 처음 시간표를 받고 왜 이렇게 계획했을까 궁금해하고 있으니 동기 한 명이 우스개 소리로 말했다. 1급 정교사 자격 연수가 선자리와 비슷한 역할을 하다 보니 집합을 원한다는 민원을 들은 게 아닐까 하고. 혹은 커플 매칭이 취미이신 교장 교감 선생님 및 고경력 선생님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하트 시그널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첫날은 교재 배부 및 오리엔테이션 명목으로 대강당에 모여 8시간을 앉아 있었다. 도망치려면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지만 인생에 한 번은 들어야 하는 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올해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화상 연수도 집합 연수만큼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듀얼 모니터로 딴짓을 하기도 힘들었던 건 얼굴을 비추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종종 발표도 시켰기 때문이다. 멀티 플레이어가 아닌 난 딴짓도, 연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어마어마한 연수의 늪에 빠졌다는 걸 깨닫게 됐다.


 연수 2주 차에 접어드는 시점에는 온몸이 쑤시고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몸이 아무래도 이상하긴 했지만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한 탓에 생기는 근육통과 다를 게 없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때 푹 쉬었어야 했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도 피곤은 사라지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게 된 건 시골에 도착한 뒤였다. 목이 칼칼해 타이레놀을 먹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더 심해졌다. 관절 주변, 특히 허리와 팔꿈치, 무릎이 너무 아팠다. 일단 일하러 왔으니 일만 끝내 놓고 얼른 부산으로 내려왔다.


 다음 날 쨍쨍한 햇볕 아래서 오들오들 떨며 편의점으로 어기적 어기적 기어가 자가 키트를 구매했다. 검사 결과, 양성. 16일에는 시험도 쳐야 하는데. 철없는 소리를 좀 하자면 왜 방학에. 다른 선생님들도, 우리 반 아이들도 학기 중에 걸렸는데 나는 왜 방학 중에 걸리냐며 쌜쭉거렸다.


 그래도 위로를 좀 해보자면 학기 중에 걸렸을 때 밀려 올 그 죄송함, 미안함을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교감 선생님 눈치를 안 봐도 된다는 것. 연수는 22일에 끝나지만 격리는 20일에 끝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좀 살려 주신다면 마다하지 않고 그 구원의 손길을 꼬옥 붙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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