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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Sep 02. 2022

어르신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D-120

 결전의 날까지 5일 전이면 '개학'이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된다. 유의어로는 '출근'이 있다. 여름 방학이 짧은 동기는 9월이 다가올수록 표정과 목소리가 과도하게 밝아지며 내 신경을 자극했다. 교회 소모임에서도 개학에 허덕이는 나의 모습에 해맑게 즐거워하는데,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다고 덩달아 웃기는 했지만 내 신세가 우스워 새어 나온 웃음이었다. 수요일은 전교사 출근일이었는데 이상하게 아침부터 짜증이 났더랬다. 무슨 영문인가 싶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개학 알레르기였다. 학부모가 미치기 전에 방학이 끝나야 했기에 방학은 언제나 그들에겐 길었고 나에겐 짧았다.


 방학 때는 연수를 들으며 학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가정에서 안전하게  지내고 있는지,  안전사고가 발생하여 다치지는 않았는지 점검하는 용도이긴 하나 보고 싶은 마음도 1t 스푼 정도. 학교 전화로 발신하면  받을  같아 미리 문자도 보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통화 연결음이 금방 끊어졌다. 수신 거부를   같아 학부모님께 먼저 연락을 하고 학생에게 다시 전화를  경우도 다반사다. 다행히 다친 학생은 없었지만 코로나에 걸린 학생이 많았다. 많이 아팠냐고 물어보니 다들 각자의 복지가 있었던  같아 보였다. 특히 학원을  갔다는 점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


 드디어 개학날. 8시에 출근해 복도와 반을 밝히고 연구실에 물을 받았다. 20분 정도가 되면 복도 끝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새뜻하기도 하고 피곤한 듯 무겁기도 하다. 올해는 등교 수업 일수도 많았고 학생 특성도 활발한 편이라 40일의 방학이 무색하게 아침부터 떠들썩하다. 나는 가끔 5-6학년을 부를 때 어르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올해는 반 정도가 애기 티를 못 벗었다. 보통 6학년 최고 어르신들은 엄한 양반 같은 면이 있어 뛰지도 않으시고 적지도 않으시고 잔기침만 해대며 말수도 적으나 언제나 예외는 있으니까.


 개학하는 날엔 다행히 4교시라 크게 준비할 게 없었다. 방학 때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진진가 게임을 하고 그 결과로 자리를 바꿨는데 대부분 원하는 학생들과 앉은 거 같았다. 삐죽이들은 여전히 입을 내밀고 마음에 안 드는 점들을 나열했지만 내가 봤을 땐 그만하면 숫제 과분한 자리에 앉은 거다. 밥을 다 먹고 태풍이 지나간 듯 허전한 교실을 보고 있으니 아직도 개학이 실감 나지 않았다. 뭔가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에 멍해 있다가도 어제부터 쏟아진 일들이 생각나 퍼뜩 자리에 앉았다. 금요일 수업 준비도 제대로 할 시간이 없이 새 학기 업무를 처리하고 있으니 벌써 퇴근할 시간이 다 됐다.


 2학기가 시작됐다. 시작하는 날 곧바로 방학식까지 남은 날짜를 보니 120일을 밑돌았다. 다행이다. 할 수 있다. 120일만 견디자. 정신 바짝 붙잡고 미치지 말자. 어르신들의 편안한 마지막 학기가 되도록 즐겁게 기쁨조를 자처하자.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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