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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Sep 04. 2022

나도 벌레 무섭거든

 하루는 출근을 했는데 정말 엄지 만한( 여태 나보다 손이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곤충이 칠판 앞에 뻔뻔한 자태로 구부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꼽등이 같이 생기기도  것이 뒷다리를 한껏 꺾어  태세처럼 보였으나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무작스러운 모습이 불량스러워 속으로 깜짝 놀라며 고함을 질러댔지만 선생님이라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 관심도 없는  책상으로 곧장 향했다. 다행히 5층에는 학생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조금 여유롭게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날따라 여학생  명이 일찍 등교했다.


 내 계획은 이랬다. 두루마리 휴지를 두툼하게 말아 곤충 위로 떨어뜨리고 고함도 지르고 지랄 발광을 하며 곤충을 손으로 감싸 동동거리는 발걸음으로 운동장 쪽 창문까지 간 뒤 밖으로 투척. 고함, 지랄 발광이 가장 핵심인 계획이었는데 8시 10분에 등장한 한 여학생 덕에 그 방법은 수포로 돌아갔다. 여학생은 자기 자리 앞에 떡하니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는 그 곤충을 신기하게 바라보다 나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는데 나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척, 심지어 관심도 없는 사람처럼 '어' 하고 말았다.


 저 끔찍하게 큰 곤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빗자루가 떠올랐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이었지만 휴지보다는 나았다. 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와 조심스럽게 쓸어 빗자루의 솔과 쓰레받기의 단단한 부분을 올가미처럼 사용했다. 결과는 대성공. 미리 창문을 열어 놓아 깔끔하게 처리했다.


 그래도 그 곤충은 가만히 앉아라도 있었지 벌이 들어오는 날이면 정말 난감하다. 학생들도 난리 부르스를 추고 나는 내적 댄스를 흔들어대는 대표적인 곤충이 벌이다. 아무래도 공격성이 있고 쉬지 않고 날아다니는 점, 날아다닐 때 윙윙거리는 소리가 공포스럽다. 주변에서 고함을 질러대면 더 긴장되기도 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무려 5마리의 벌이 5층에 침입해 있었다. 말벌집이 학교 담벼락에 종종 생기는데 이번에도 생긴 모양이다. 우리 교실에 들어온 거도 아니고 여자 화장실에 들어온 벌 얘기를 꼭 나한테 얘기해야 할까. 바로 옆에 체육 선생님도 계시잖아 얘들아. 나도 무섭다고.


 다행스럽게도 빗자루, 쓰레받기와 합이 잘 맞아 백전백승 시원한 승리를 거두고 있어 5마리의 벌을 밖으로 안전하게 내보낼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땀이 삐질삐질 났지만 수업 중인 교실이 있어 탭 댄스도 추지 못했다. 그러나 아주 숙련된 기술자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일을 마무리했고 아무도 다치지 않고 처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제발 다음에는 체육 수업 듣다가 나온 건 나 말고 체육 선생님한테 부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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