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출근을 했는데 정말 엄지 만한(난 여태 나보다 손이 큰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곤충이 칠판 앞에 뻔뻔한 자태로 구부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꼽등이 같이 생기기도 한 것이 뒷다리를 한껏 꺾어 뛸 태세처럼 보였으나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 무작스러운 모습이 불량스러워 속으로 깜짝 놀라며 고함을 질러댔지만 선생님이라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 관심도 없는 냥 책상으로 곧장 향했다. 다행히 5층에는 학생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조금 여유롭게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날따라 여학생 한 명이 일찍 등교했다.
내 계획은 이랬다. 두루마리 휴지를 두툼하게 말아 곤충 위로 떨어뜨리고 고함도 지르고 지랄 발광을 하며 곤충을 손으로 감싸 동동거리는 발걸음으로 운동장 쪽 창문까지 간 뒤 밖으로 투척. 고함, 지랄 발광이 가장 핵심인 계획이었는데 8시 10분에 등장한 한 여학생 덕에 그 방법은 수포로 돌아갔다. 여학생은 자기 자리 앞에 떡하니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는 그 곤충을 신기하게 바라보다 나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는데 나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척, 심지어 관심도 없는 사람처럼 '어' 하고 말았다.
저 끔찍하게 큰 곤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빗자루가 떠올랐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이었지만 휴지보다는 나았다. 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와 조심스럽게 쓸어 빗자루의 솔과 쓰레받기의 단단한 부분을 올가미처럼 사용했다. 결과는 대성공. 미리 창문을 열어 놓아 깔끔하게 처리했다.
그래도 그 곤충은 가만히 앉아라도 있었지 벌이 들어오는 날이면 정말 난감하다. 학생들도 난리 부르스를 추고 나는 내적 댄스를 흔들어대는 대표적인 곤충이 벌이다. 아무래도 공격성이 있고 쉬지 않고 날아다니는 점, 날아다닐 때 윙윙거리는 소리가 공포스럽다. 주변에서 고함을 질러대면 더 긴장되기도 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무려 5마리의 벌이 5층에 침입해 있었다. 말벌집이 학교 담벼락에 종종 생기는데 이번에도 생긴 모양이다. 우리 교실에 들어온 거도 아니고 여자 화장실에 들어온 벌 얘기를 꼭 나한테 얘기해야 할까. 바로 옆에 체육 선생님도 계시잖아 얘들아. 나도 무섭다고.
다행스럽게도 빗자루, 쓰레받기와 합이 잘 맞아 백전백승 시원한 승리를 거두고 있어 5마리의 벌을 밖으로 안전하게 내보낼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땀이 삐질삐질 났지만 수업 중인 교실이 있어 탭 댄스도 추지 못했다. 그러나 아주 숙련된 기술자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일을 마무리했고 아무도 다치지 않고 처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제발 다음에는 체육 수업 듣다가 나온 건 나 말고 체육 선생님한테 부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