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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Sep 18. 2022

부족해서 다행입니다

 자잘하게 벌려놓은 일들이 많아서 그런지 괜히 정신이 없다. 일주일 분량의 수업을 그 전 주에 계획하고 준비하는 건 단순히 수업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매주 동화책을 읽고 약안 하나를 쓰기로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다양한 수업을 해보려는 나름의 시도다. 퇴근하면 체육관에 가기 전에 강아지를 산책시켜야 한다. 매일 아침, 오후 두 번은 나가야 같이 늙어가는, 말도 못 하는 금수에게 미안하지 않다.


 오늘은 서평단 도서를 어서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책을  권이나 가지고 지하철을 탔다. 주짓수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이 대략  시간 밑도니 오가는 길에 읽으면 읽을  같았다. 운동 후에 아는 형이랑 외식을 하기로 했으나 10 전에는 귀가해 소설 800 베껴쓰기, 용례를 몰라 저장해뒀던 단어 하나를 공부하면 12 전에는 자겠지. 5 반에 기상하면 얼추 5시간 수면이 가능하겠지만 피곤함이 벌써부터 밀려온다. 그렇다고 아침 묵상, 기도를  하고 시작할  없으니 꾸역꾸역 일어는 나야 한다.


 학교에서 전교사 종례만 없었어도 소설 800자 베껴쓰기와 단어 공부는 퇴근 전에 미리 끝냈을 텐데. 긴 연후 직후 수업도 어색하고 업무도 손에 안 잡히다 보니 하루 종일 수난했다. 문득 벌려놓은 일들이 왜 이리도 많은 건지, 그중에 성장한 것이 한 가지라도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드럼 연습은 한다고 한다고 했는데 개학 후 2주 동안 드럼 스틱을 잡아 보지도 못했으니 발전을 바라는 게 욕심이겠지만.


 주짓수도 글쓰기도 드럼도 수업도 업무도 어느 것 하나 빼어나게 잘하는 게 없다 보니 매일 주어진 과제들을 처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눈에 보이는 성과는 물론이거니와 누가 상을 주는 거도 아닌데. 소설 한 번 안 베껴 쓰거나 주짓수 좀 빼먹는다고 못하던 걸 특출나게 못하게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리석어 보인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글을 쓰는 건 이거 하나는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꽤 오랜 기간 노력했는데 성장하지 못해 불안한가? 아니면 내가 계획했던 대로 일상이 흘러가지 않아 뿔이 난 걸까. 다른 건 다 몰라도 글과 수업만은 애정을 가지고 노력하는데 느는 건 불만뿐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 다양하게 등장하는 어미와 조사들. 생각했던 것만큼 따라주지 않는 학생들. 나의 이상이 주제에 맞지 않게 높은 것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20대 초반과는 다르게 무기력함이 필요할 때 불쑥불쑥 온다는 게 참 감사하다. 뭐든지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주체할 수 있는 무기력함. 더 뜨거운 열정이나 채찍질이나 포기나 위로가 아니라.


 나는 현재 잘하는 것이 없는  이치에 맞는 일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처음부터  것이 아니었을 테니 가지려고 아등바등하는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다. 노력해서 가지게  것들을 내가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게 될지.  그걸 얼마나 재고 다닐지 생각하면 차라리 있는 것보다 없는  낫다. 그저 뜨겁게 꿈틀거리며  멈추기도 했다가 재시도 하기도 했다가, 꾸준히 하다 보면 가질  있을 때나 가질  있겠지.  가지면   없는 일이고.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는 동안 내가 가져야  태도에 대해, 무기력에 대해 조금  생각해 봐야겠다.


 나는 지금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졌던가. 가족을 가졌고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친구들이 있다. 야발지고 아금받은 직장 동료나 상사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나를 사랑해주는 학생들이 있다. 20명을 상회하는 시선들이 나를 바라볼 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 안달나는 마음이나, 걔들이나 나나 더 나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서 나불거리는 잔소리도 빼먹으면 안 되지. 그들 덕분에 내가 사는 세상이 한결 더 아름다워지고, 곰살맞아지고.


 그러나 내가 지금 가진 것은 나의 실력으로 얻은 것이었던가. 오히려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결핍에서 오는 모든 못난 생각과 태도 때문에 싸우고 화내고 토라지고 다시 화해하는 과정이 있고 나서야 붙어 있게 됐던 것인데 어째서 나는 더 완벽해지지 못해 조급했던 것일까. '못해도 괜찮아' 정도가 아니라 '못해야 괜찮은' 거라는 걸 이렇게 또 써보며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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