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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Oct 01. 2022

금목서 꽃향기가 나면

 나는 아직까지 그 달콤한 향을 대신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작은 병에 담기는 액체로 향기를 따라 할 수 있을지라도 잠깐 비추고 마는 수줍음은 흉내 내지 못하리라. 아무리 역치가 낮아 쉽게 피로해지는 감각 기관이라지만 다가서면 다시 나야 할 향긋함이 자취를 감추고 슬쩍슬쩍 곁눈질할 뿐. 그래서 특별한 건 줄도 모르고 애를 쓸수록 코만 아프다.

 분명 또 바쁘게 걷고 있었을 것이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만 분명히 인지하고 숨 가쁘게 걷는 게 습관인 나는 그날도 학원엘 가든지 학교엘 가든지 목적지로 힘차고 당차게 걸었다. 여느 나무와 다를 것 없이 평범한 묘목들이 늘어선 화단을 끼고 가고 있었다. 순간 맡아본 적 없는 향이 나를 멈춰 세웠다. 뒤돌아서서 요리조리 코를 들이밀며 어디서 나는 향인지 찾아보았다. 첫 자극과는 다르게 희미한 잔향만 남은, 작은 꽃이 다발로 핀 나무는 딱 한 그루가 전부였다.

 '금목서'

 명찰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 이름을 몇 번 읊조리며 제 갈 길을 가다 아련하게 한 번 뒤돌아봤다. 가을이 되어 그 향을 맡게 되면 어김없이 그러나 의도하지는 않게 이름을 떠올리려 한다. 혀 끝에 단어가 맴돌다가도 봉선화 열매가 터지듯 뽁하고 튀어나오기 일수다. 언제쯤 돼야 금목서 세 글자에 익숙해질까. 그 이름도 향을 닮아 휘발성이 강한 게 분명하다.


 지하철을 타려고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때 훅 끼쳐 오는 금목서 향에 처음 맡아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금목서 한 그루가 모르는 척하고 딴청을 피웠다. 진항 청록색 이파리에 오렌지빛 꽃다발이 군데군데 핀 나무가 그 색 때문인지 눈에 확 띄었다. 가까이 가서 한 번 더 맡아보고 싶지만 옅은 향의 흔적만 남았을 걸 알기에 고개를 돌려 지하철을 타러 갔다. 내년에나 또 맡을 수 있을까.

 매번 하는 일이지만 어김없이 휴대폰을 켜 '금목서 향수'를 찾아본다. 여전히 마땅한 제품은 없다. 하지만 정말 그 향이 병으로 팔린다면 나는 사지 않을 것이다. 내 몸에서 나길 바라는 향은 아니다. 그럼에도 왜 금목서 향수가 있는지 검색했는지는 나조차 의아하다. 아마 향기롭고 싶다는  생각이었던가.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나는 녹차 같은 사람이라 했다. 금목서 향이 나는 녹차라, 상상만으로도 부조화다.

 다른 사람에게서  향을 맡고 싶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함부로 따라할  없는  발랄함과 달콤함을 풍기는 성인이라면 요란할 것만 같아 선듯 다가가기 꺼려진다. 나만 알았으면 성 싶은 향이기도 하고. 그저 1년에  , 짧은 가을에 잠시 맡는  가장 이상적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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