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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Oct 22. 2022

취미, 특기란에 뭐 적으세요?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주짓수를 시작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막연하게 강한 자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고 말이 안 통하는 청소년, 특히 중학생보다 강해지는 게 목표였다. 영화에서 있을 법한 상황처럼 우리 반 학생을 괴롭히는 중학생 여럿 앞에 당당하게 등장하는 히어로 교사.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며 농담 식으로 몇 마디 나누다 펼쳐지는 진검승부. 상상만으로 스스로에게 취한다. 장르는 학원/성장 드라마다.

 첫 시작은 그러했으나 2년 반 정도 하다 보니 어느새 가지각색 부연 설명이 덧붙여지며 지루한 다큐 멘터리로 장르가 변경됐다. 어쩌다 이 사달이 났나 씁쓸하지만 그 감정마저도 삼삼한 게 이제는 지독한 일상이 돼버려 별 감흥도 없다. 3개월에 접어들었을 땐 땀 때문에 가게 됐다. 학교에서 내내 감정을 억누르고 말을 아끼다 보니 혈중 분노 수치는 높아져만 갔고 정신 건강을 위해 뭘 배출하긴 해야 했는데 땀이 딱 제격이었다.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매력에 1년이 훌쩍 지나갔다.

 1년을 넘겼을 시점에선 가고 싶어서 간다기 보단 몸이 가서 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배웠던 기술도 복기해 보고 다음에 어떻게 연결시킬지 구상하기도 했는데 점점 그런 열정은 시들해졌다. 아무 생각 없이 다니기만 하다가 드디어 친구 한 명을 사귀게 되고 그 친구를 통해 형, 동생과 친해지며 떠들러 가게 되는 2년 반 차 어엿한 주짓떼로가 돼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소개서를 쓸 때면 가장 곤란했던 질문이 취미, 특기였다. 공부 말고는 딱히 닦아온 재능이 없기도 했고 뭐든 쉽사리 질리는 편이라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뭐든 금방 질리게 만든 것 같다. 또 취미나 특기라 하면 전문적인 수준은 돼야 쓸 수 있다는 강박이 있는 바람에 한참을 고민하다 버스 여행 따위를 써버리곤 말았다. 거창하거나 번지르르할 필요는 없었는데도 언젠가 그것으로 나를 증명해야 할 것만 같아서 보여줄 수는 없지만 막연하게 심오한 버스 여행을 썼더랬다. 하기사 지금도 왕복 1시간 반 거리의 도장을 다니며 책도 읽고 글도 쓰니 버스 여행이 정말 체질에 맞을지도.

 지금은 취미, 특기란에 주짓수를 쓸 수 있냐 하면 너끈히 자신 있지는 않으나 수줍게라도 쓸 수 있다. 그랄 하나를 더 받아도 되나 민망스럽지만 좀 못하는 파란 띠 삼 그랄이 있을 수도 있지 하며 편하게 생각하련다. 다른 건 다 잊어도 스파링에서 스스로를 증명하지 말라는 관장님의 명언은 마음에 아로새긴 터라 한 장짜리 종이의 작은 네모 칸 앞에 둔중하지도 가뿐하지도 않으려 한다. 보라띠까지는 그렇게, 증명하지 않은 채로 견뎌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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