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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Oct 24. 2022

이거 이거 중요하다잉

'불안'을 읽고

 고등학교 3학년 때를 제외하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다. 얼핏 뇌리에 남는 건 초6 때 음모가 있다고 자랑을 했다가 보여주지 않아 왕따를 당했던 황당한 사건 외엔 누군가 먼저 와서 놀렸던 적이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고. 고등학교 3학년 때도 학교 폭력 피해자 같은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반 학생 모두의 등 뼈를 아주 강하게 때리고 다녔던 그 아이는 장난에 무심한 나까지 반응하게 만들었다. 일방적으로 맞긴 했으나 신나고 즐거운 기억이다.

 최근 우리 반에서 서로 간의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얘기를 들으며 처음엔 뭐 그런 걸로 싸우나 싶었지만 나도 예전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저 친구의 베스트 프랜드가 아닌 거 같아 질투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나를 덜 소중하게 여겨줘서 상처받았던 숱한 날들이 있었다. 내가 감정에 대해 더 많이 알았다면 덜 아팠을까. 조그마한 공감에도 눈물을 뚝뚝 흘리는 반 아이를 보니 가르쳐야 할 게 선명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어쩌면 뇌라는 기관이 만들어지는 순간 우리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때만 해도 남자가 울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이 '남자가  우노'였다. 그렇게 우린 우는  나쁜 거라는  학습했다. 지금도 여전히 모두가 눈물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는  같기는 하다.  울고 마음을 정리하고 오라고 하면 혼나는 기분인 걸까. 울지 말라고  것도 아닌데  억지로 울음을 그치려고 하는  안타깝다.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상황들을 그림으로 제시하고 어떤 기분이 드냐고 물었다. 학교를 마치고 나가는 순간, 친구가 내 쿠키를 들고 도망가는 순간, 어제 산 새 휴대폰을 떨어뜨려 망가지게 한 순간. 다양한 감정에 대해 얘기하며 어떤 상황에서 드는 감정에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것을 서로 얘기하곤 '불안'을 읽었다.

 책 제목을 공개하지 않고 어떤 감정일 것 같은지 추측하게 하며 동화책을 펼쳤다. 글이 많은 편은 아니라 그림을 주로 관찰했는데 새가 어떤 때 커지고 작아지는지 잘 관찰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반 전체로 완독 후 모둠 별로 동화책을 다시 읽으며 그 감정이 무엇인지 추측하게 해 흥미를 높였다.

 감정의 종류, 지속성에 대해 자유롭게 발표를 한 뒤 오은영 박사님이 등장하는 영상을 보며 감정이 옳고 그른 게 아니라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에 옳고 그름이 있다는 걸 인지 시켰다. 마지막 활동으로 학생들에게 여러 감정 카드 중 두 개를 뽑게 해 모둠별로 상황극을 만들었고 발표한 뒤 대처 방법에 대해 자유롭게 토의했다.


 상황극을 제작하고 발표하는 활동은 시간이 오래 걸릴 줄은 알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총 3시간을 소요했다. 부끄러움이 많은 6학년이지만 극을 짜고 발표하는 등의 활동도 은근히 즐긴다. 재밌는 요소들만 삽입하고 우스꽝스러운 대사들로 학습 목표가 희석되지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했지만 다행히 모두 선을 지켰다.

 사실 '불안'은 한참 뒤에 수업하려 했는데 애들이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계획이 뭐 대순가. 자연스럽게 드는 감정들 속에 자신이 나쁜 아이가 아닌가 싶어 불안해하고 자신만 그런 건 아닐까 하며 속상해하는 아이들에게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그건 잘 처리하면 곧 사라지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여느 수업과 다를 바 없이 듣는 학생들은 듣고 조는 학생들은 졸고 있는데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공부는 못해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마음을 잘 다스렸음 싶었는데. 꼭 이런 수업은 들어야 하는 학생들이 듣지 않는다. 상황극은 잘 참여했으니 뭐라도 하나 기억에 남기를 바란다. 오늘 수업이 지금 당장 적용되지는 않아도 정말 힘들고 지칠 때 문득 기억이 나서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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