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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Oct 28. 2022

너는 크게 다를 줄 알았어?

 그날은  조차도 모든 감정이 갑작스러웠다. 아이들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는데 어찌  영문인지 5교시가 됐을  잔뜩 분개한  수업을 하고 있었다. 볕이 따사롭고 배는 부르니 눈이 감기는  당연한 이치라는  깜박한 탓이다.  자리에 앉은 지가 벌써 10 전이라 까마득했던  변명이라면 변명일까. 나는 엎드려 자는 아이, 꾸벅꾸벅 조는 아이, 동태눈으로 멍한 아이들을 보며 넘치기 일보직전인 분노를 감당하고 있었다. 태양의 남중 고도와 기온이 가장 높은 때가 왜 두 시간 차이가 나는지, 열이 받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며.

 잠도 깨울 겸 1학기 내용 기억나지 했더니 눈치 없게 아니요 하는 학생이 딱 분노 한 방울을 거들었다. 시야가 점점 거메지고 목 뒷덜미가 차가워지며 생각이 느려졌다. 나는 몸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얼른 자리로 돌아가 곧 쓰러질 사람처럼 푹하고 주저앉았다. 다행히 분노는 입이나 주먹으로 향하지 않고 뇌로 직행했는데 불순물은 최대한 걸러내고 한다는 말이,

 "선생님 수업 안 할래."

 말을 내뱉고도 어처구니가 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유치 찬란해졌는지 좌절하고 있었다. 내심 아니에요, 죄송해요 같은 반응을 기대했으나  멀리서 천진하게 왜요 하고 묻는 말에 나는  잔뜩 삐진 채로 다들 너무 피곤해 보이고 대답도 시원치 않아서 수업하기 싫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처음에 무슨 상황인가 싶어 갸우뚱거리더니 평소비춰보았을   표정이나 말투가 크게 화가  보이지 않았다고 판단했는지 이내 수긍하고 자기  일을 했다. 나는 별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컴퓨터 자판을 쳐대고 괜히 업무 포털에 로그인도 해보다 성적을 처리했다. 엎드렸던 아이들은 제야  일어나 친구들과 잡담을 시작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제대로 배출되지 않은 감정이 몸 구석구석을 맴돌며 숨을 가쁘게 하고 몸을 뜨겁게 했다. 나는 얼른 휴대폰을 집어 친한 동기 카톡방에 완전 짜증 난다고 뇌까렸더니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나를 위로해 주는 답장이 속속 도착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교실의 풍경이었는데 무엇이 나조차 깜짝 놀라게 했을까. 사실 4교시 체육 시간부터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었다. 자기들이 좋아해서 나갔더니 게임에 지면 '아, 우리 팀 어차피 질 거임' 같은 무기력함이나 '패스하라고' 같은 성질과 남 탓이 넘쳐나는 분위기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 옆에선 이긴 팀이 잔뜩 골리려 들고 그러면 진 팀이 와서 나에게 일러바치고. 계속 말하고 있는데도 승부욕 조절이 잘 안 되는 건지. 지나치게 잘하려고 하고 꼭 이겨야 하는 그 성질 탓에 재밌어야 하는 시간이 갈등으로 번지고 말았다. 거기까지도 늘 그렇다고 칠 수 있다. 그런데 팀을 나눌 때부터 불만이 가득했던 한 아이는 게임 내내 제대로 참여도 하지 않고 자갈을 줍더니 교실에 올라가면서도 괜찮냐 묻는 친구들의 대답에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그게 날 자극했다. 저 철딱서니 없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대신 점심 먹고 잠깐 얘기 좀 하자고 부드럽게 말했다. 기껏 자리를 마련해 얘기 좀 해보려고 하니 마음 문도 꾹 닫고 틱틱거리는 바람에 상담도 흐지부지 끝났지만 말이다.

 상담실 문을 열고 멀어지는 그 아이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내가 왜 저런 사소한 불만까지 다 신경 써줘야 하는지 깊은 의문이 들었다. 자기 부모한테나 보일 어리광을 6학년 교실에서 보이고 있으니 내가 너무 무른 선생인가 싶었다. 저 생각이 화근이었다. 불만이 이어졌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갛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하는 맹랑한 노래처럼 이어지는 불만 메들리에 잔이 점점 채워져 갔고 5교시가 된 거다.


 아이들을 보내고 동기에게 전화가   와서 넋두리를 놓았다. 동기는  얘기에 공감해 주며 조심스럽게 방법 하나를 제시했다. 아주 쌀쌀맞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   있도록 예민하게 사흘만 보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속이 시원해졌다. 호탕하게 웃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짧은 통화를 쳤다. 그러나 기분 나아지질 않았다나는 퇴근하고 나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맛있는 걸 먹고 나의 일상에 활력이 되는 일들을 하다 보면 금세 잊힐 거라고 되뇌었다.

 집에선 금요기도회에 가기 전 간단하게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성경 공부를 했다. 교회에서 듣는 성장반 수업에선 교제에 성경 구절을 필사하는 게 숙제였는데 그날따라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이 너무 길기도 했고 필사하는 공간이 턱없이 좁고 작았다. 나는 성질이 또 뻗쳐 오는 걸 느끼며 분노의 그릇에서 속삭이시는 음성을 들었다.

 '너라고   있는  아니?'

 나이 서른 먹고도 공부하다 보면 잠도 오고 이걸 왜 하나 싶어 그만두고 싶은 게 사람이라며, 나는 5교시의 아이들과 비교당했다. 이건 경우가 다르지 않냐고 따지러 드는 반항끼마저도 비슷하게 닮아버린 내 모습을 돌아보며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차 싶긴 했으나 화가 나는  화가 나는 거라서 기도회 자리에서 잔뜩 열을 냈다.  내가 이런 것까지 감당해야 합니까. 나도 알고 있습니다. 내가 특별하고 잘난  아닌  알긴 아는데 나는  화도 제대로    내고 속으로 삭이고만 있어야 합니까. 내가 걔들 부모도 아니고 떼쓰고 어리광 부리는 일까지 감당해야 하는 겁니까. 그렇게 기도하곤 성대를 단단하게 조여 입으로만 온갖 욕을 해댔. 고함도 입과 표정으로만.


 토요일을 지나며 살얼음판 계획은 점차 확신이 없어졌다. 내가 지켜줘야 하는 아이들에게 그런 순간까지 계획하며 짐을 지우고 싶진 않았다. 물론 여전히 미웠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점점 이성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되찾은 이성으로 앙갚음을 하고 싶었던 마음 점차 누그러뜨리고 주일 설교 말씀에 눈물까지 흘리반성하고 나니 다시 잔이 비며 평온해졌다. '네가 가진 것이 가장 최고'라는 목사님의 말이  나에게 하시는  같았다. 너희 반이 최고야. 하나님은 너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는 분인데, 너희 반이 최고가 아닐 수가 있겠니.

 아이들의 부족함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 일은 부끄럽다.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라 내 감정이었는데도 그거 하나 조종하는 게 힘들어서 토라지고 분노했다니. 그저 아이들이 눈치 채지 못했던 게 감사할 따름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오늘도 면벽하는 자세로, 예수님을 대하는 듯 겸손하게 마주해야겠다. 제발, 잘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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