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고도를 측정하러 가기 위해 1교시부터 밖으로 나섰다. 장마가 끝나고 비구름이 점차 사라지더니 높다란 하늘을 따라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적이 쌀쌀한 날씨에 플리스 자켓을 챙겨 볕이 잘 드는 곳으로 뒤따라 나갔다. 정신없이 뛰노는 몇몇 애들은 실험에 별 관심도 없고 놀고 싶은 마음뿐인가 보다.
"선생님 놀아요."
평소에도 할 건 하고 놀아야 한다는 걸 가르쳐 왔던 터라 빨리 하고 놀자며 다독이곤 태양의 고도를 측정했다. 높은 하늘에 낮게 뜨는 태양이 꼭 방방 뛰는 아이들과 차분하게 앉은 내 모습인 듯했다. 간신히 2분을 남기고 수업을 마치니 왁자지껄 신나게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간다. 얼마 전 새단장한 우레탄 바닥의 조합 놀이터가 애들에게 꼭 알맞았다. 저학년용이라 꽉 끼는 옷처럼 답답해 보이긴 했지만 분위기는 그랬다. 하늘에 채공하는 듯 표표히 걸어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금세 날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마음은 참 가벼워지는데 생각이 무거워 벤치에 기대 쉬고 있었다.
'그래, 아이들이라면 자못 가두지 않는 곳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게 생래적이겠지.'
장면 보다는 이 새뜻한 마음을 기억하고 싶어 주머니를 툭툭치며 휴대폰을 찾았다. 개똥도 찾을 땐 없다더니 잘 쓰지도 않는 기기가 꼭 이럴 때 없다. 급한대로 학생 휴대폰을 빌려 사진을 찍었다. 교실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갑갑함을 느끼지 않고 오늘 찍은 사진을 보며 당연한 듯 넘겨 짚을 수 있게.
점심 식사 후 운동장을 보니 5-6학년 학생들이 가득했다. 철봉에 거꾸로 메달려 세상을 거꾸로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우레탄 바닥이 아니라 모래 바닥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찍고 교실로 돌아오니 옹기종기 모여 앉아 보드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쳐다봤다.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큐브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이기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도 꽤 자연스러워 보였다. 학생들에겐 교실도 어울린다는 생각에 이르니 혼란스러워졌다.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곳들만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역의 장소인 교실까지 자신들의 공간으로 만드는 저 자연스러움.
'장소가 아니라 표정이었구나.'
활짝 피기도 하고 은은하기도 하고 심각하기도 한 표정들은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무표정이나 졸린 표정 보다도 주변을 생기돌게 했다.
삭막하기로는 출근길이 으뜸인데 지하철이든 버스든 길거리든 활짝은 아니라도 상기된 표정으로 앉은 사람을 보게 된다면 가을처럼 설렐까. 도시에 부족한 건 청년도 아이도 아니라 표정일 수 있겠다. 씩씩한 결의, 따뜻하게 싱긋하는 생그러움, 고심하는 미간의 주름, 한없이 가벼운 발걸음. 그것들의 부재가 쓸쓸한 회색빛의 소이였던가.
마스크를 벗게 되는 날에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게 될 때 활짝은 아니더라도 가볍게 웃고 있어야겠다. 늘어지게 하는 하품 따위가 전염이 된다면 웃음도 옮겠지 하는 마음이겠으나 사명감을 띈 무거움은 아니라 퇴근 후 먹으려 아껴 놓은 케이크를 생각하는 가벼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