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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Oct 31. 2022

표정의 부재

 태양의 고도를 측정하러 가기 위해 1교시부터 밖으로 나섰다. 장마가 끝나고 비구름이 점차 사라지더니 높다란 하늘을 따라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적이 쌀쌀한 날씨에 플리스 자켓을 챙겨 볕이 잘 드는 곳으로 뒤따라 나갔다. 정신없이 뛰노는 몇몇 애들은 실험에 별 관심도 없고 놀고 싶은 마음뿐인가 보다.

 "선생님 놀아요."

 평소에도 할 건 하고 놀아야 한다는 걸 가르쳐 왔던 터라 빨리 하고 놀자며 다독이곤 태양의 고도를 측정했다. 높은 하늘에 낮게 뜨는 태양이 꼭 방방 뛰는 아이들과 차분하게 앉은 내 모습인 듯했다. 간신히 2분을 남기고 수업을 마치니 왁자지껄 신나게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간다. 얼마 전 새단장한 우레탄 바닥의 조합 놀이터가 애들에게 꼭 알맞았다. 저학년용이라 꽉 끼는 옷처럼 답답해 보이긴 했지만 분위기는 그랬다. 하늘에 채공하는 듯 표표히 걸어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금세 날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마음은 참 가벼워지는데 생각이 무거워 벤치에 기대 쉬고 있었다.

 '그래, 아이들이라면 자못 가두지 않는 곳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게 생래적이겠지.'

 장면 보다는 이 새뜻한 마음을 기억하고 싶어 주머니를 툭툭치며 휴대폰을 찾았다. 개똥도 찾을 땐 없다더니 잘 쓰지도 않는 기기가 꼭 이럴 때 없다. 급한대로 학생 휴대폰을 빌려 사진을 찍었다. 교실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갑갑함을 느끼지 않고 오늘 찍은 사진을 보며 당연한 듯 넘겨 짚을 수 있게.


 점심 식사 후 운동장을 보니 5-6학년 학생들이 가득했다. 철봉에 거꾸로 메달려 세상을 거꾸로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우레탄 바닥이 아니라 모래 바닥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찍고 교실로 돌아오니 옹기종기 모여 앉아 보드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쳐다봤다.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큐브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이기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도 꽤 자연스러워 보였다. 학생들에겐 교실도 어울린다는 생각에 이르니 혼란스러워졌다.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곳들만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역의 장소인 교실까지 자신들의 공간으로 만드는 저 자연스러움.

 '장소가 아니라 표정이었구나.'

 활짝 피기도 하고 은은하기도 하고 심각하기도 한 표정들은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무표정이나 졸린 표정 보다도 주변을 생기돌게 했다.

 삭막하기로는 출근길이 으뜸인데 지하철이든 버스든 길거리든 활짝은 아니라도 상기된 표정으로 앉은 사람을 보게 된다면 가을처럼 설렐까. 도시에 부족한 건 청년도 아이도 아니라 표정일 수 있겠다. 씩씩한 결의, 따뜻하게 싱긋하는 생그러움, 고심하는 미간의 주름, 한없이 가벼운 발걸음. 그것들의 부재가 쓸쓸한 회색빛의 소이였던가.

 마스크를 벗게 되는 날에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게 될 때 활짝은 아니더라도 가볍게 웃고 있어야겠다. 늘어지게 하는 하품 따위가 전염이 된다면 웃음도 옮겠지 하는 마음이겠으나 사명감을 띈 무거움은 아니라 퇴근 후 먹으려 아껴 놓은 케이크를 생각하는 가벼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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